인더뉴스 홍승표 기자ㅣ올해 1월 중순, 재건축과 재개발 및 리모델링을 아우르는 도시정비사업 시장에서 분기점이 될 만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쌍용건설이 서울 송파구 아남아파트를 수평·별동 방식으로 리모델링한 ‘송파 더 플래티넘’ 단지 잔여분에 대한 일반분양을 진행한 결과 무려 2599대 1이라는 청약 경쟁률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리모델링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이 증명된 일이었다”며 “도시정비사업에서 리모델링 시장이 확실히 성장하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노후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사업이 여러 규제로 난항을 겪는 곳이 많은 가운데 ‘리모델링’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안을 넘어 '대세'로의 전환마저 감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최근 2년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의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 추진단지 통계(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전국 아파트 단지는 94곳이며, 가구 수는 7만 889가구로 집계됐습니다. 전년인 2020년 54곳, 4만551가구보다 각각 40단지(74.1%), 3만338가구(74.8%)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아파트 리모델링이 주목받는 이유는 재건축보다 사업 문턱이 낮아 원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한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우선 재건축의 경우 아파트 준공 후 30년 이상 연한을 채워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 이상이면 사업 조건을 충족하게 됩니다.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 이하가 나와야 하는 재건축과 달리 C등급 이상을 받으면 사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용적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가구 별 전용면적의 30~40% 이내로 증축이 가능합니다.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에 대한 사업성이 없는 아파트 단지 입장에서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만 초과이익 환수제 대상이 아닌 점도 리모델링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건축은 기부채납 대상으로 적용돼 공원 등 부대시설을 마련해야 하며 임대주택도 의무로 공급해야 합니다. 리모델링은 기부채납 대상에서 제외되는데다 기존 아파트 골조를 바탕으로 증축해 시간, 비용적 측면에서도 부담이 덜합니다. 조합 설립을 위한 동의율 또한 66.7%로 75%를 충족해야 하는 재건축보다 낮습니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단지 가운데 리모델링 추진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성남 분당입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분당에서는 9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기 위한 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실제로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한솔마을 5단지와 구미동 무지개마을 4단지가 올 상반기에 세대별 분담금을 확정하고 이르면 하반기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갑니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리모델링 착공을 하는 단지가 나온만큼 1기 신도시 내 리모델링 붐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리모델링 ‘바람’은 서울로도 이어졌습니다. 2021년 전체 리모델링 단지 중 절반 이상이 서울에 집중됐습니다. 리모델링협회 조합설립 통계에 따르면, 추진단지 94곳 중 53곳이 서울권 아파트 단지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용산 이촌동, 강남 3구 등 서울 내 전통적 부촌으로 꼽히는 지역에서 진입 장벽이 높은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도드라졌습니다.

특히, 이촌동의 경우 준공한 지 45년이 넘은 현대맨숀이 재건축을 뒤로 하고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리모델링에 돌입하며 화제가 됐습니다.
현대맨숀에 이어 동부이촌동 북쪽 주거단지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한가람, 강촌, 코오롱 단지 또한 리모델링 행렬에 동참해 조합 설립을 완료하고 시행 절차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상황입니다.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경우 이촌동 북부구역은 ‘리모델링 타운’이 구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요자들의 관심이 입증되면서 대형 건설사들도 리모델링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리모델링 준공실적 1위 쌍용건설과 '전통의 강호' 포스코건설, DL이앤씨가 건재한 가운데 '건설사 Big 3' 중 하나로 꼽히는 현대건설과 GS건설 또한 리모델링 열풍에 동참했습니다.
현대건설, GS건설은 그동안 리모델링 준공실적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수주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리모델링 사업 수주액만 1조9258억원을 달성하면서 업계 1위에 올랐습니다. GS건설도 수주액 1조4175억원을 올리며 현대건설, 포스코건설(1조3923억원), DL이앤씨(1조344억원)와 함께 '리모델링 1조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현대건설은 리모델링 시공 성과가 있는 건설사와의 협업을 강조하고 일부 단지에는 자사의 프리미엄 주거 브랜드인 '디에이치'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며 수요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재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GS건설은 지난해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수주전에서 적극적인 어필로 리모델링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처럼 대형 건설사까지 '리모델링 대열'에 합류하며 리모델링은 재건축의 대안을 넘어 또 하나의 정비사업으로 자리를 굳히는 모습입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아파트의 노후화 진행으로 개선작업이 필요한 단지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재건축 외에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정비사업에 대한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은 5~6년정도면 대부분 주택 입주까지 완료되지만 재건축의 경우 사업 기간이 길고, 여기에 안전진단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사업진행 시기가 걷잡을 수 없어지게 된다”며 “이 때문에 ‘삶의 질’을 우선가치로 생각하는 30~40대 젊은 주택 소유주를 중심으로 주거환경이 신속히 개선되는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