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해양국가입니다. 해상교통로 보호와 전략물자 수송, 국가 생존의 기반을 책임지는 해기 인력은 흔히 ‘제4군’으로 불리며, 군사력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 안보 자산으로 평가받습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해방 직후부터 이러한 인재를 양성해온 교육기관으로, 해군 창설과 대한민국 건군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습니다. 이번 기고문은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총장이 직접 집필한 글로, 건군과 함께 걸어온 제4군 해기인력의 역할과 미래적 의미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인더뉴스 제해영 기자ㅣ
■ 현대 국가안보는 더 이상 육·해·공군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국가 전략물자 수송과 해상교통로(SLOC)를 지키는 바다는, 총성 없는 전쟁터입니다. 이 바닷길은 곧 국가경제의 명운이 걸린 생명선이며, 이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예비전력이 바로 ‘제4군’ 해기인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평시에는 세계 수출의 최전선에서 국가 산업을 떠받치는 핵심 인력이자, 유사시에는 해상 보급과 전략자산 운송을 책임지는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로서 활약합니다. 여기에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대한민국 건군사의 뿌리에서부터 이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제4군'을 양성해 온 핵심 전략기지입니다.
■ 해양강국 대한민국, Sea Power는 인재에서 시작된다
◦ 지난 9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창설 80주년 국제 관함식에 국립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바다호'가 30여 척의 군함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는 우리 실습선이 단순한 교육실습선을 넘어, 군사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오늘날의 '해양력(Sea Power)'을 보여주는 상징성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해 오늘날의 해양력은 단지 군사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선부터 해양산업, 해운물류, 수중데이터, 조선기술,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 인재까지 포함한 총체적 역량입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바로 이 총체적 해양역량의 근간이 되는 해기인력을 양성해왔고, 앞으로도 시대의 변화를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 대한민국 건군과 함께해온 국립한국해양대학교
◦ 10월 1일은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로,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을 기념하고, 국토방위의 사명을 다해온 군 장병들의 헌신을 기리는 날입니다. 국군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양안보 역사의 중심에 선 교육기관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국립한국해양대학교입니다.
◦ 국립한국해양대학교의 기원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대한민국 최초의 해기교육기관으로 현)진해 해군기지 내에 설립된 진해고등해원양성소가 있습니다. 이 양성소는 태평양전쟁 이후 광복과 함께 독립국가로 출발하던 대한민국의 해운 재건과 해군력 기반 마련을 위해, 미군정 하에 설립된 민·군 겸용의 해양 인력 양성소였습니다.
◦ 이후 손원일 제독이 초대 해군총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양성소 출신 인재들과 함께 1945년 11월 11일 ‘해방병단’을 창설, 대한민국 해군의 모태를 구성하게 됩니다. 해방병단은 단 3척의 함정과 150여 명의 인원으로 출발하였지만, 이후 발전된 해군의 기반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진해고등해원양성소(현, 국립한국해양대)는 국군 해군의 요람이자 해기 전문 인력의 산실로 자리잡았습니다.

◦ 즉, 한국해양대는 해운과 해군, 민간과 군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해양력(Sea Power)의 실질적 출발점이며, 국군의 기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해양교육기관입니다.
■ 국가위기시 마다 해기인력은 국가 존립의 생명선
◦ 한국전쟁 당시, 군함이 아닌 민간 상선과 해기인력이 물자 수송과 피란 작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1950년 흥남철수작전에서 수십만 명의 국민을 구한 주역은 단지 군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해기사들이었습니다.
◦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집니다. 전시 상황에서도 의료지원을 수행할 수 있는 실습선의 병원선 전환 계획, 재난 시 긴급 식수와 보급품 운송 체계, 해군과 연계한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활성화는 모두 민·군·산·학이 협력하는 해양강국 대한민국의 전초기지로서 한국해양대의 책무를 보여줍니다.

■ 국가 생존의 지속능력, 바다에서 시작된다
◦ 21세기 글로벌 경쟁의 핵심은 더 이상 단순한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성장률에 있지 않습니다. 기후위기, 에너지 자원고갈, 식량 안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복합위기 속에서 국가 생존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가전략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시작점은 바로 바다입니다.
◦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가로서,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에너지, 식량의 99% 이상을 바다를 통해 운반합니다. 바다는 국가 경제를 유지시키는 ‘생명의 길’이며, 유사시에는 전략물자 수송, 군수 보급, 인도주의적 지원의 핵심 경로로 기능을 합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민간 상선들이 보여준 ‘해상 생존의 힘’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위기에 대한 강력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 북극항로 개척 시대, 특히 최근 대만해협, 남중국해, 홍해 등 주요 해상통로에서의 긴장 고조는, 해상물류망에 대한 위협이 곧 국가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다시 일깨웁니다. 따라서 해양 주권을 지키고, 전략해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바다를 통한 국가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은 단순한 국방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존속성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 더욱이 최근 미국은 자국 내 조선·정비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며 우방국에게 함정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조선해양산업은 단순한 산업 차원을 넘어, 동맹국 안보와 국제 전략 안정성까지 연결된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조선해양산업을 잃는다는 것은 곧 국가 안보의 취약성을 의미하며, 이를 방기하는 순간 국가안보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Sea Power’, 즉 해양력의 실질적 고도화가 필요합니다. 해양력은 단지 군사적 해군력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상선, 항만, 수중로봇, 무인해양플랫폼, 해양에너지, 해상풍력, 극지탐사, 스마트 선박 등 민간과 공공을 아우르는 해양기술력과 인적 역량의 총합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문 해기인력이 존재합니다.
■ 산업혁신의 첨병: 스마트 해양 인프라와 AI 해양교육으로 글로벌 선도
◦ 우리는 이제 단순한 항해기술을 넘어, 스마트 해양도시와 자율운항, 수중로봇, 수중음향통신, 해양AI가 일상화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이에 대응하여 해양AI 및 무인이동체 중심의 연구거점을 확대하고, Sea Power의 실체를 기술과 인재 중심으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 2024년 해양모빌리티 특구 지정, 해양방산기업과의 공동연구소 설립, 부산시와의 전략적 R&D 협력은 해기 인력의 역할이 산업적·전략적 가치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향후 국립한국해양대는 국내외 해양안보와 산업의 중심에서 미래형 해양인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 해양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영역입니다. 대한민국이 신해양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양현장을 이해하고 운용할 수 있는 전문 인재의 확보가 선결 조건입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창립 이래 '교육은 곧 해양안보'라는 신념 아래, 해기인력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국가안보의 핵심역량, 산업혁신의 선도자로 양성해 왔습니다.
◦ 우리는 이제 ‘지상에 머무는 교육체계’를 넘어, 해양과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열린 북극항로 시대의 전략대학으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국립한국해양대학교는 국방, 산업계, 지방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해양을 중심으로 한 실질적 역량을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Sea Power를 지탱하는 국가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서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양주권 수호의 전진기지로서 그 소임을 충실히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