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제해영 기자ㅣ부산대학교(총장 최재원) 심리학과 주성준 교수 연구팀이 한글 단어가 영어 단어보다 병렬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22일 밝혔습니다.
이 연구는 한글의 읽기 메커니즘과 문자 체계가 인간의 인지 처리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한글 단어쌍이 의미적으로 연관돼 있거나 자주 함께 쓰이는 경우, 인간의 뇌가 두 단어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기존 영어 기반 연구에서는 병렬 처리가 어렵다는 결론이 지배적이었지만, 문자 체계의 차이가 인지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연구는 19세에서 28세 사이 남녀 42명을 대상으로 1440개의 한글 단어를 무관, 합성어, 의미 연관 단어쌍으로 구분해 제시하고, 각각의 단어를 생물/무생물로 분류하는 의미 범주화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연필-지우개’, ‘고모-이모’처럼 의미적으로 연결된 단어쌍과 ‘눈-사람’과 같은 합성어 단어쌍에서는 단일 과제보다 이중 과제 조건에서 반응 정확도가 높았으며, 이는 두 단어가 병렬적으로 인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연구팀은 한글의 ‘모아쓰기’ 방식과 음절 단위의 일대일 대응 구조, 규칙적인 철자법 등이 이러한 병렬 처리 가능성에 기여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영어는 글자와 소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인지 처리에 더 많은 자원이 소모되지만, 한글은 구조적으로 명확하고 직관적인 인지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성준 교수는 “의미적으로 연결된 단어들에서는 한 단어의 인지가 관련 단어를 자동으로 활성화시켜 더 빠르고 정확한 이해를 가능케 한다”며 “이는 인간 인지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한글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언어별 읽기 전략 차이를 정교하게 이해하고, 다국어 학습과 독서 교육, 난독증 재활 등에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보호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주 교수 연구팀의 유상아 박사가 제1저자로, 주성준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습니다. 논문은 미국심리학회(APA)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익스페리멘털 사이콜로지: 제너럴' 2025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