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브랜드 가치를 지닌 상품의 물량이 한정적이면 구매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사람들은 샤넬백과 롤렉스 시계를 누구보다 빨리 사기 위해 추위에도 밤새 줄을 섰고 오픈과 동시에 달렸습니다. 트렌드의 척도로 자리 잡은 '오픈런' 현상은 이제 명품시장을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MZ세대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단순한 소통 채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들은 소비를 통해 개성을 드러냅니다. 값비싼 제품이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인정받기에 충분해집니다.
'보상심리'는 코로나19 기간 명품 오픈런을 이끌었습니다. 2020년 초 본격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들은 시공간에 제약을 받게 됐고, 기약 없는 해외여행과 불만을 명품으로 보상받길 원했습니다. 유통업계 전반이 큰 타격을 받는 와중에도 명품 시장은 홀로 성장세를 거듭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 3사의 해외 유명 브랜드(명품) 매출은 전년보다 37.9% 증가했습니다. 해당연도 식품 매출 증가율의 약 3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백화점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명품은 코로나 기간 백화점 실적을 견인했습니다.
명품 이후로도 오픈런은 의류와 디저트, 팝업, 주류, 콘서트, 예술품 등 형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캐릭터 유니폼, 수량이 한정된 약과, 1분도 안 돼 매진되는 인기 가수 콘서트 티켓 등에서의 오픈런 성공담은 SNS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희소성"이라며 "돈이 많다고 사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빨리 가서 줄 서고 오픈런하면 내가 돈이 조금 없더라도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것을 공정의 하나의 사례로 얘기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은 소비자가 직접 매장에 가지 않아도 상품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넷과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각종 정보 교환이 활발해졌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면서 '좋은 상품'으로 여겨지는 것에 관심과 수요가 몰렸습니다. 위스키 오픈런도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주류 문화의 키워드는 '다 같이, 많이'에서 '소수, 가볍게'로 옮겨졌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하이볼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레시피가 확산하면서 더 이상 위스키는 '비싸고 독한 술', '마니아용 술'이 아닌 MZ세대에게 핫한 술로 떠올랐습니다.
위스키 시장 성장에 맞춰 편의점들은 인기·희귀 위스키에 '한정판'을 붙여 내놨고 고가임에도 오픈런을 유발하며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열풍을 주도한 건 20~30대입니다. GS25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연령별 구성비에서 20대(39.6%)와 30대(43.3%) 비율은 82.9%를 기록했습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측면에서 오픈런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팍팍한 경제 사정, 치열한 경쟁 등 사회·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개인의 무력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픈런은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지는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행동이라는 결론도 내놓습니다.
이은희 교수는 "사실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성취감을 맛보는 일이 많지 않다. 직업적으로는 사회 초년생이거나 취업 준비생"이라며 "젊을 때 '뭔가를 해냈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런 오픈런 같은 걸 통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최소 평균 정도에 속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FOMO 증후군(fearing of missing out,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되는 것에 불안해하는 증상)'으로 해석되는 이러한 심리는 유행과 타인의 행동에 민감할수록 더 증폭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 앞에 사람이 많은지 차가 얼마나 서 있는지 보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개성이나 독특함보다 동조성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태크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한정판 명품 가방, 신발 등은 중고거래 시장에서 최대 수십 배 비싸게 거래되는 까닭에 오픈런의 활성화는 곧 리셀(재판매)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 19 확산 당시 명품 오픈런은 실수요자보다 리셀러 비중이 더 많았다고 업계는 추측합니다.
오픈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합니다. 리셀을 통해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지난해까지 오픈런 아르바이트와 대행사가 성행한 것도 그러한 이유가 큽니다. 샤넬은 매장에서 재고량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아 소비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최근 해외여행 확대와 함께 명품의 대중화로 가치가 하락하면서 리셀 시장도 주춤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샤넬이 가격을 인상한 '클래식 플랩백 라지'의 정가는 1570만원이지만 현재(6월 21일 기준) 리셀 플랫폼 크림에서는 같은 제품이 113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통업계 내 크고 작은 오픈런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 '줄이 줄을 부르는' 오픈런은 마케팅 가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GS25 관계자는 "오픈런을 통해 한 번이라도 고객이 매장을 내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 유인 효과가 있다"며 "근래에는 특히 일본 주류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데 희귀 위스키처럼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상품을 꾸준히 들여오는 게 GS25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