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소설가ㅣ혀를 즐겁게 하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몸에 좋다는 음식은 맛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빈말로라도 ‘건강식’ 소리를 못 듣는 술에는 몸에 좋다는 음식보다 혀를 즐겁게 하는 음식이 안주로 훨씬 잘 어울리니 환장할 노릇이다. 폭탄에 폭탄을 더해 몸속으로 쏟아붓는 꼴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 순간만큼은 즐겁다고 자폭을 마다하지 않는 게 술꾼 아닌가. 술꾼은 역시 못 말릴 종족이다.
수많은 폭탄 같은 안주 중에서 가장 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안주는 무엇일까.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듣는 음식은 대체로 맵거나 짜고 달거나 기름지다. 그중에서도 기름진 음식이 안주로 최고이고 건강에는 최악이다. 기름진 음식에 풍부한 포화지방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술을 부르기 때문이다. 이런 안주는 대부분 육류인데, 그중에서도 곱창과 막창 등 내장 부위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폭탄 중의 폭탄이다.
맛있는 안주는 보통 맛있는 반찬이기도 하다. 술집에서 가장 환영받는 안주인 육류가 밥상에서도 가장 환영받는 반찬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내장은 분명히 육류인데도 조금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내장이 밥상에 반찬으로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내장은 주로 집 밖에서, 그중에서도 술집에서 주로 안주로 소비된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언제 내장을 처음 먹었는지 기억을 재생해보시라. 성인이 되기 전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내장은 술을 좋아하는 ‘어른의 맛’이다.
내장으로 만든 안주의 대표 주자는 역시 곱창이 아닐까. 씹는 맛이 즐거운 쫄깃한 곱창과 입안에서 크림처럼 퍼지는 고소한 곱의 환상적인 조화. 그 맛을 아는 술꾼에게 곱창이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는 반사신경처럼 소주를 부르게 하는 주문이다. 잘 익은 곱창을 가위로 자를 때, 술꾼들은 마치 복권 당첨 방송을 지켜보듯 긴장한다. 곱창 안에 하얀 곱이 얼마나 들어차 있느냐가 그날 술자리의 분위기를 좌우하니 말이다.
불판에 흘러넘칠 정도로 곱이 꽉 차 있다면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곱의 흔적이 희미하다면 탄식이 새 나온다. 곱창이 신선할수록 곱의 밀도가 높아지므로, 자리 회전율이 좋은 맛집에서 먹어야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 대신 가격대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서 눈치 보지 않고 배부르게 곱창을 안주로 먹을 수 있다는 건, 지갑이 꽤 넉넉하다는 증거다. 주변에 그런 술꾼이 있다면 친해지는 게 좋다.
곱창은 구워 먹어야 제맛이라는 고집을 피우지 않는다면, 그보다 저렴한 전골도 안주로 훌륭한 대안이다. 적은 양의 곱창으로도 매력적인 맛을 낼 수 있는 안주이니까. 곱창전골에서도 핵심은 곱이다. 곱창에서 빠져나와 육수에 골고루 퍼져 익은 곱은 평범한 육수를 비범하게 바꿔준다. 육수에 오래 끓여 부드러워진 곱창 역시 소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다. 소주 안주로 우열을 따지면 구운 곱창과 곱창전골은 막상막하라는 게 내 의견이다. 소주에는 국물이 치트키이니 말이다. 곱창전골은 곱창을 구워 먹지 못해 대용으로 먹는 가난한 안주가 아니다. 다른 차원에 있는 새로운 맛이다.
곱창이 나왔는데 막창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막창은 곱창보다 더한 폭탄이다. 막창은 과장을 보태자면 포화지방 그 자체다. 몸에 그리 좋지 않은 음식이란 건 구울 때 줄줄 흘러나오는 기름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기름이 소주를 부르는 요물이다. 잘 구운 막창을 씹을 때 과즙처럼 입안에서 터지는 기름의 고소한 맛. 곱창이 담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맛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몇 점만 맛있고, 더 젓가락을 들이대기가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이때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는 게 양념이다.
내 외가는 막창으로 유명한 대구에 있고, 외삼촌이 한때 막창집을 운영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 꽤 많은 막창을 술안주로 먹었다. 대구에서 막창집의 생명은 막장이라고 불리는 양념이다. 막창의 질이 상향 평준화돼 있다 보니 승부는 막장에서 갈린다. 막장 제조 방법은 어느 맛집이든 극비 사항인데 공통점은 있다. 잘게 썬 쪽파와 청양고추를 섞은 된장. 이를 기본으로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와 비율을 사용한다. 막장은 막창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특유의 누린내까지 지워주는 특효약이다. 꽤 많은 막창집이 손님에게 콩가루를 함께 내준다. 이 콩가루가 또 기가 막히다. 막창에 고소한 맛을 더해주면서 느끼한 맛을 덮어주니 말이다.
돌이켜보니 과거에는 곱창과 막창이 주로 선배에게 얻어먹는 안주였고, 요즘에는 후배에게 사주는 안주가 됐다. 문득 곱창과 막창을 얻어먹는 사람에서 사주는 사람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기성세대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이 갈리겠지만,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선배와 후배가 다른 자리보다 편하게 어울려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자리가 술자리라고 생각한다.
술자리에서 선배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지갑을 여는 선배, 다른 하나는 지갑을 열지 않고 말만 많이 하는 선배. 나는 전자를 통해 몰랐던 맛을 배우며 술자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후자를 통해 술자리에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멋있는 선배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멋을 숨길 수 없었다. 멋은 여유와 품격에서 나온다는 걸 이젠 조금 알겠다.
나는 후배에게 어떤 선배였을까. 솔직히 전자에 속한 선배는 아니었다. 불안한 내 위치를 포장해 보여주려고 술의 힘을 빌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고, 아직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멋있는 선배는 되지 못할지라도, 후배가 연락할 때 곱창과 막창을 실컷 먹으라고 부담 없이 사주며 고민을 들어주는 선배 정도는 되고 싶다. 이 잡설을 끼적이며 지난 술자리를 추억하는 동안에 한 작은 다짐이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