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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일본의 눈] “신도는 제천의 고속” 발칵, 교수직도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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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ly 22, 2019, 19:07:53

김정기 교수가 쓴 일본이야기 6 한반도-일본열도 중간다리 쓰시마의 진실

 

쓰시마의 복점이 ‘제천(祭天)의 고속(古俗)’을 사상적으로 동반한다고 이전 이야기가 짚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먼저 제천의 고속이 일본 신도에 사상적으로 일본 신도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신도가 천황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천황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메이지 시대 쿠메 쿠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란 역사학자가 “신도는 제천의 고속”이라는 글을 써 신도 계를 발칵 뒤집혀 놓았다. 이것이 도쿄제국대학 역사학 교수인 쿠메의 유명한 필화사건이다. 그는 ‘신도’를 비방했다는 죄목으로 교수직을 쫓겨나는데, 여기서 ‘신도’란 교파신도나 민간신도가 아니라 국가신도인 것이다.

 

국가신도란 뒤에 다시 조명할 기회가 있을 터이지만 간단히 말해 신도국가화 정책에 의해 신사신도 등 종교를 재편성하고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아라비토카미])으로 하는 천황제 지배의 사상적 지주이었다. 이런 종교정책 아래 “신도는 제천의 고속”이라는 ‘이단’이 용납될 리 없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터이다.

 

그러나 어쩌랴. 신도가 제천의 고속에 유래한다는 것은 진리 중의 진리인 것을. 이 진리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중간다리 격인 쓰시마가 발원하고 있다. 그러니 쿠메 발언은 논리적으로는 뒤집힐 수도, 뒤집혀서도 안 되는 것이다.

 

쿠메는 이와쿠라 유럽사절단[岩倉遣欧使節団]을 수행해 그 일기체 기록[日錄]인 <특명전권대사미구회람실기>(特命全權大使米毆回覽実記)를 저술해 유명해진, 한학에 밝은 역사학자이다. 그는 제국대학 역사학 교수로서 정부로부터 의뢰한 국가의 정식 편년사를 편찬하는 임시편년사 담당 편찬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고증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표적 실증사학자’로 간주되고 있었다(島薗進, 2010, 45). 게다가 그는 일선동조론을 적극적으로 펴 식민통치에 기여한 관학자이다. 그런데도 1892년 3월 4일 문부성은 필경 쿠메에 비직(非職: 사실상 파면) 처분을 내려 그는 도쿄대학에 쫓겨나고 말았다.

 

천황제의 함의

 

쓰시마 남단 쓰쓰에는 다카미무스비(高御魂) 신사가 들어서 있다. 제신은 타카미무스히노카미(高皇産巢日神)으로 되어 있다.

 

타카미무스히노카미란 어떤 신인가? 이 신은 <고사기>에 의하면 천지개벽 때 천황가의 하늘나라 고향인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天御中主神)와 카무무스비노카미(神皇産霊神) 함께 창조[造化] 삼신 중 한 신이며, 천손강림을 명한 천황가의 조상신이다. 이 신의 별명이 타카기노카미(高木神)인데, 다카기[높은 나무]가 함유하는 바와 같이 높은 나무에 내리는 무격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이 신을 제신으로 하는 신사가 쓰시마에 들어서 있는가라는 의문이 인다. 시바료타로는 이 신이 쓰시마에 존재했다는 것을 근거로 그 의문을 풀고 있다(2008, 211~212). <일본서기> 현종(顕宗[켄슈-]) 3년 여름 4월 조에 태양신[日神(히노카미)이 어떤 자[우라베일 것이다]에 지펴 “우리 조상[我が祖] 타카미무스비노타마(高皇産霊)에 이와레(磐余: 야마토 토이치군(大和十日郡)의 밭을 바쳐라”고 하는 탁선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이에 따라 쓰시마의 하현(시모아가타)의 아타이(直: 고대 왜왕조의 지체 높은 문벌 성의 하나-글쓴이)가 이 신을 야마토에 분사했다고 되어있기 때문에 <고사기>에서 말하는 천황가의 조상신은 본래 쓰시마에 있었다고.

 

여기서 보다 중요한 의문이 인다. 천황가의 조상신이 어떤 연고로 한반도와 마주하는 쓰시마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시바가 말해 준 것은 해답인 듯 아닌 듯 매우 아리송한 암유(暗喩)처럼 들린다.

 

이것은 귀복 제사를 주재한다는 북방 아시아의 처지에서, 천황가가 쓰시마의 복점사[卜部(우라베)]들이 쓰시마 산에서 제사 지냈던 ‘천(天)’을 상징하는 신들을 조상신으로 가로챈 것인가, 아니면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씨가 말하듯이 고대 천황가가 기마민족의 수장으로서 북방에서 그 제천의 습속을 받아들여 오면서 쓰시마를 거쳐 남하하고 본토로 들어왔다는 것을 점검하고 위와 같이 되었는가, 어느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다만 고대의 천은 높은 하늘도 깊은 바다도 나라의 영역으로 삼는 20세기보다도 훨씬 넓었음에 틀림없다. 쓰시마의 천이 훨씬 넓은 북아시아의 창공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모양새이다(위 책, 212).

 

시바는 천황가가 쓰시마의 토속신을 가로 채 조상신[다카미무스히노카미]으로 만들었든, 에가미 나미오 교수가 주장하듯 북방기마민족의 수장이 직접 남하해 일본을 정벌했든, “쓰시마의 천이 넓은 북아시아 창공에 연결되어 있다” 일갈한다. 이는 천황가의 고향이 북아시아, 특히 조선에 다름 아니라고 그의 어법으로 말한 것이다. 에가미 나오미는 도쿄대 교수로 일본군국 주의 패망한 전후 기마민족 정복설을 주장해 역사학계에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천황가의 고향이 한반도”라는 말이 단순한 ‘설’을 넘어 ‘명제’로 뒷받침한 것이 쓰시마 섬이다. 그 유력한 증거가 하현 코후나코시(小船越) 부근에 들어선 아마테루신사(阿麻氐留神社)이다. 제신은 아메노테루미타마(天照魂) 또는 아메노히노카미(天日神)라 한다.

 

물론 이 경우 ‘아마테루(阿麻氐留)’는 아테지(当て字: 한자 본래 듯과 관계없이 그 음이나 훈을 빌려 쓰는 말--글쓴이)이기에 아마테루(天照)를 표기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신은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모셔진 아마테루오미카미(天照大神, 이하 ‘천조대신’)과 매우 유사하게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시바는 여기서 또한 “천황가의 조상신으로서 이세신궁에 모셔진 천조대신과 같은 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쓰시마 고래(古來)의 속신인 오히데리사마[태양신]인가” 짐짓 의문을 제기하고는, “그러나 <고사기>의 타카마라하라(高天原)의 창조 삼신 중 한 위가 쓰시마 남단 쓰쓰에 있다”고 일깨운다(위 책, 211). 다시 말하면 쓰시마의 아마테루 신사의 제신은 천조대신에 다름 아니라고 짚은 것이다.

 

시바는 이런 어법[짐짓 의문을 제기하고는 자신이 의도한 말을 하는 어조]으로 천황가에 대해서 말을 이어 간다. 그는 “고대 쓰시마에 천(天)의 사상과 골복이 상륙하자 천은 텐이라고도 텐그리라고도 부르지 않고 아마·아메라고 하는 재래의 말로 되고 만다” (위 책, 210, 강조--글쓴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시에 당시 쓰시마의 복점사[우라베(卜部)]들은 골복에 부속하여 전해진 천상신[아마츠노카미(天つ神)]의 사상과 신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천상신은 일본국토에 토착한 지상신[쿠니츠노카미(国つ神)]과는 달리 관념성이 강한 존재라 할 수 있다. ‘타카마가하라(高天原)’를 고향[祖地]로 하는 이 일군의 특이한 신들은 <고사기> <일본서기>에 의해 천손민족의 직계라는 천황가의 조상신 군으로서 독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안에서 쓰시마 만은 이례적으로 천상신들이 토착신으로서 섬 안에 얼마든지 여기저기 제사를 받고 있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천상신을 고신도(古神道)에 받아들인 것은 쓰시마가 먼저인가, 천황가가 먼저인가 잘 모르겠다(위 책, 210~211).

 

그러나 시바는 이어 “이것에 대한 의문은 몇 해 전 이 섬에 온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씨가 느끼고 그의 저서 <일본신화>에서 선구적으로 언급하고 있다”고 일깨운다. “그 때 쓰시마 사가 나가토메 히사에 씨가 우에다 씨와 함께 섬 안을 걸으면서 그 의문을 함께 나누었다”고.

 

시바는 나가토메 씨를 치켜세운다. 그가 서해안 키사카(木阪)의 와다쓰미 신사(海神神社)의 사가(社家, 세습 신관가) 출신이라면서 “섬 안에 신도유적지에 밝고 게다가 우익 사상화한 메이지 후의 국가신도의 해독에서 면하고도 남을 만한 인물”이라고. 이는 쓰시마 섬이 천황가보다 먼저 천상신을 고신도에 받아들인 것을 그가 에두른 어법으로 뒷받침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시바는 천황가에 대해서 이런 에두른 어법으로 짐짓 의문을 제기하지만 곧 자신이 하고픈 말을 놓치지 않고 있다. 물론 시바는 소설가이기에 이런 에두른 어법 표현을 개인적 취향으로 즐긴다고 굳이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일본 천황은 패전 뒤 마련된 ‘맥아더 헌법’아래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 군국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쇼와(昭和) 시대(1926~1989)는 지나갔고 그의 아들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헤이세이(平成) 시대(1989~2019)도 올해로 저물었다. 다시 그의 아들 나루히토(德仁) 천황이 올해 즉위해 레이와(令和) 시대가 왔다고 일본열도가 떠들썩하다.

 

천황, 우익정치 상징

 

그러나 일본 헌법아래 천황은 실권 없는 국민통합의 상징이라 했지만 일본의 현실 정치에서 천황의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그의 아비와는 달리 특히 아키히토 천황의 경우 자신이 백제 무녕 왕의 후손이라든가 또는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고 평화를 호소하는 그의 인성은 돋보인다. 그러나 천황 개인의 인성적 품위와는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일본 우익 정치의 축으로 군림하는 측면을 놓칠 수 없다.

 

 

예컨대 1979년에 성립된 원호법(元戶法)은 신사본청(神社本庁)과 같은 극우단체의 정치활동으로 제정된 것이다. 이 신사본청의 실상에 대해 미국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루프(Kenneth J. Rouff)는 상징 천황제란 전후 천황의 정치적 기능을 중심적으로 설계한 군주제인데, 그것이 정착하는 가운데 “종교적 동기를 배경으로 항상 천황의 정치적 기능을 주장한 것이 신사본청이었다”고 짚었다. “신사본청은 국민 다수가 합의하고 있는 상징 천황제보다도 천황의 정치적 기능을 강화하려는 정치운동의 대표 격”이라면서 원호법안의 성립을 위해 지방의회를 부추기는 운동에 대해서 “77년서 79년에 걸쳐 신사본청 본부는 마치 작전지휘실(a war room) 같았다(Rouff, 2001, 194)”고.

 

여기서 말하는 원호법이란 메이지, 다이쇼, 쇼와 등 천황의 치세를 헤아리는 햇수에 군주의 연호를 넣는 방식[쇼와○○년]을 법제화한 것이다. 그 본질은 군주의 연호가 개인 삶의 햇수를 대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올해 2019년 태어난 일본 어린이는 평생 ‘레이와 1년 생’을 동반해야 한다. 출생신고에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으니. 또 다른 예로 어떤 일본인 저자가 올해 책을 출간한다면 출판사는 ‘레이와 1년’ 간으로 적어야 한다.

 

과연 일본 국민은 천황의 신민으로만 그들 삶의 틀이 결정되는 것을 자발적으로 기뻐하는 것일까, 무의식적인 천황의 관성력에 끌려간 것일까. 그나마 시바와 같이 에둘러나마 천황가에 대해 자기 말을 하는 ‘국민작가’가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참고문헌

 

司馬遼太郞, <街道をうゆく> 13편, 「壱岐·対馬の道」, 朝日新聞出版, 2008

 

島薗進. <國家神道と日本人> [岩波新書 1259], 岩波書店, 2010

 

Kenneth J. Rouff. <The People's Emperor: Democracy and the Japanese Monarchy, 1945~1995>, Mass. Cambridge and London: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글쓴이=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

 

◇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다.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일본천황, 그는 누구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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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기 기자 pnet21@inthenews.co.kr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C-레벨 터치]치킨 3위 교촌…허니시리즈 만든 송종화 ‘절박함’ 통할까

2024.04.25 07:00:00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치킨업계 1위를 지켜온 교촌치킨의 성장세가 멈췄습니다. 적극적인 출점과 마케팅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린 bhc, BBQ와 대비되는 흐름에 본업 경쟁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교촌은 '허니시리즈의 아버지' 송종화 대표 체제에서 올해 새판 짜기에 돌입합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치킨업계 매출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bhc 매출이 전년보다 5.5% 증가한 5356억원으로 교촌치킨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치킨 3사 중 유일하게 매출 5000억원을 넘겼습니다. BBQ는 지난해 매출이 12.8% 증가한 4732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2년 연속 500억원 넘게 올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만 역성장했습니다. 지난해 매출이 44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 줄었습니다.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온 국내 치킨프렌차이즈 업계 선두 자리를 bhc에 뺏겼고 BBQ에 2위 자리마저 내줬습니다. 3위로 내려앉았지만 이유는 있습니다. 교촌은 외연 확장보다 내실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수익성 개선에 성공한 교촌에프앤비입니다. 영업이익이 248억원으로 전년 대비 181% 늘었습니다. 1년 사이 3배 급증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1.7%에서 5.6%로 3.9%p 끌어올렸습니다. bhc와 BBQ의 영업이익은 각각 1203억원, 553억원으로 전년보다 15.2%, 13.7% 줄었습니다. 교촌에프앤비 측은 "당초 가맹점 확장 전략을 추구했다면 매출이 큰 폭으로 올라 업계 순위 회복이 어렵지 않았겠지만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가맹점 수익이 우선이라는 권 회장 경영철학을 2023년 실적에서도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가맹점 및 파트너사와 상생 협력 관계 구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점포당 점주 매출은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거래에 따르면 2022년 교촌치킨 가맹점의 전국 평균매출액은 7억5000만원으로 bhc(6억원), BBQ(4억3000만원)보다 높습니다. 0%대 폐점률도 이를 입증합니다. 다만 가맹점주 수익성 보전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외형 성장이 더뎠고 매출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경쟁사들이 수십 개 이상 매장을 낼 때 교촌에프앤비의 신규 출점 매장은 10개에 불과했습니다. 전국 가맹점 수(2022년)에서도 교촌에프앤비(1365개)는 BBQ(2041개), bhc(1991개)와 차이가 큽니다. 특히 치킨 가격 인상을 주도한다는 점이 매출 하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교촌은 2018년 업계 최초로 배달비를 도입했고 이는 요식업계 전체 배달비 유료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촌은 지난해 4월에도 주요 메뉴 가격을 나홀로 최대 3000원 인상하며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경쟁사 대비 부족한 히트 상품도 보완 과제로 언급됩니다. 교촌의 인기 제품으로는 1991년 간장치킨(교촌시리즈)을 시작으로 2004년 레드시리즈, 2010년 허니시리즈 등이 손꼽힙니다. 허니시리즈 이후 15년 가까이 꾸준히 신제품을 내고 있으나 히트작으로 불릴 만한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2020년 24가지 재료로 완성한 불맛을 강조하며 선보인 '교촌신화'는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2년 뒤인 2022년 7월 단종됐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같은달 블랙시크릿을 출시하며 5가지 향신료로 만든 이국적인 치킨 콘셉트를 앞세웠고 콤보 출시, 시식단 모집 등 마케팅을 강화했습니다. 블랙시크릿은 지난해 1월 출시 약 6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이 100만마리를 돌파하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시장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교촌에프앤비 입장에서는 허니시리즈를 이어 매출 증대와 신규 고객 창출을 견인할 인기 제품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는 송종화 부회장을 교촌의 새 사령탑으로 임명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교촌은 지난달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송 부회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교촌에프앤비 총괄상무 및 사장으로 재직한 전문경영인입니다. 지난해 9월 부회장으로 11년 만에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송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조류 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가라앉은 치킨 프렌차이즈 시장 위기를 극복하고 교촌치킨을 치킨 선두 브랜드로 올리는 데 기여한 프렌차이즈 전문가로 평가받습니다. 임원 재직 당시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주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교촌의 효자 상품인 '허니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 허니시리즈는 후라이드와 양념으로 대표되던 치킨 시장에 꿀을 활용해 상품화에 성공했습니다. 치킨 고객층을 아이와 여성들까지 넓히는 첨병 역할을 했습니다. 2014년에는 허니시리즈 판매량이 전년 대비 2배가량 신장하며 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30%, 63% 증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교촌은 신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모앙새입니다. 이마트와 협력해 자사 소스를 상품화한 K1 핫소스를 출시하며 소스 시장에 진출했고 지난해 6월에는 이태원에 '치킨 오마카세' 닭요리 전문점 교촌필방을 열었습니다. 올초에도 여의도에 메밀 한식주점 '메밀단편'을 론칭하고 소비자 반응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촌의 신사업 시도는 매출 부진과 맞물리며 본업 경쟁력 저하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교촌에프앤비는 그룹 성장의 전기를 마련한 송 대표 체제에서 재도약을 도모한다는 계획입니다. 송 대표는 국내가맹사업과 신성장사업, 해외사업, 각 계열사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송 대표는 취임사를 통해 "경기위축과 소비침체 등 회사 안팎의 여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박함’을 갖고 업무에 임할 것"이라며 "지속적 경영혁신을 통해 체질 개선을 가속화하고,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주력해 교촌을 100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열정을 바치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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