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정태 기자ㅣ 몇 년 전 직장인 A씨는 보험대리점을 하고 있는 B씨와 암보험 가입 상담을 했다. 당시 A씨는 “과거 만성위염으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그 정도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이 말을 믿은 A씨는 보험에 가입했다.
그 뒤 A씨는 위암 판정을 받게 됐다. 암 보험금을 받아 치료비에 사용하려고 한 A씨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대리점에 알렸다 해도, 계약 당시 위염치료 사실을 보험사에도 알렸어야 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법무부는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상법(보험편) 개정안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년 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개정안은 ▲보험대리상(대리점, 설계사)의 권한 규정 신설 ▲보험회사의 보험약관 설명의무, 보험 취소기간 연장 ▲가족에 대한 보험회사의 보험대위 금지 규정 신설 ▲보험청구권 소멸시효 기간 연장 ▲단체보험의 요건 명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 대리상(대리점)이나 설계사의 부정한 행위(불완전 판매 등)에 대해 보험회사도 일부 책임을 지게 된다. 보험대리상과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과 관련, 할 수 있는 행위’가 규정됐으며, 이에 해당하는 행위는 보험사에도 효력이 미치게 되기 때문.
이에 따라 보험대리상은 보험료 수령, 보험증권 교부, 청약·해지 등의 권한을 가지게 됐으며, 보험설계사는 보험증권 교부, 보험료 수령(일정 경우) 등의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
앞선 A씨의 경우, 기존에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사들은 합법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B씨에게 기왕증을 고지한 것이 보험회사에 고지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생겨 A씨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보험회사가 보험대리상의 권한을 제한하더라도 선의의 보험계약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도록 했다”며 “보험모집인의 권한을 명확히 함으로써 보험모집과 관련된 분쟁이 줄어들고 보험소비자 보호가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보험회사의 ‘설명의무’도 강화된다. 개정안은 보험계약 체결 때 보험회사의 보험약관 명시의무를 ‘설명의무’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보험 보장 내용의 ‘약관명시 여부’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보험계약 후 1개월 내에 계약 취소가 가능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보험사가 약관 내용을 설명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3개월 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게 된다.
일부 심신박약자도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현행법은 15세 미만자, 심신상실자, 심신박약자를 보험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사망하면 보험금이 지급되는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해왔다.
개정안은 의사능력이 있는 심신박약자가 직접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하거나 단체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에는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금 청구기간이 연장된다. 개정안은 단기의 소멸시효로 인한 보험계약자의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험회사의 보험료청구권 소멸시효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다.
가족에 대한 보험회사의 보험대위 금지 규정도 신설된다.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가족이 사고를 낸 경우에는 보험자가 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단, 고의로 사고를 낸 경우는 제외된다.
단체보험의 요건은 명확히 규정된다. 단체보험에서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나 그 상속인이 아닌 자’를 보험수익자로 지정할 때에는 단체의 규약에 명시하거나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를 얻도록 개정됐다.
이는 보험계약자인 사업자가 직원들에 대한 단체보험에 가입하면서 보험수익자를 사업자로 하여 보험금을 수령한 후 직원에게 지급하지 않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법무부는 관계자는 “이번 개정은 현장 중심의 국민 맞춤형 법률서비스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다”며 “국민 생활의 안전을 지키고,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민생 중심의 법령 정비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