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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의 안주잡설] ‘훈제연어’ 인내의 맛은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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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22, 2022, 06:05:00

 

 

정진영 소설가ㅣ패밀리 레스토랑. 요즘에는 촌스러운 장소로 취급되는 감이 없진 않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이곳에서 식사하는 일이 요즘 인스타 맛집 투어처럼 꽤 ‘힙한’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어느 매장으로 가든 30분 이상 대기하는 일이 기본일 정도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는 대단했다. 아웃백ꞏ빕스ꞏ베니건스ꞏ씨즐러ꞏ마르쉐ꞏ애슐리 등 다양한 패밀리 레스토랑이 경쟁을 벌였는데, 그중에서 나는 빕스를 가장 좋아했다. 이유는 단 하나, 훈제연어 때문이었다.

 

내가 훈제연어를 처음 접한 건 스무 살 무렵 여자 친구와 함께 빕스에 들렀을 때였다. 나는 매장에 차려진 다양한 먹거리 앞에서 빈 접시를 든 채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훈제연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생김새는 분명히 회인데, 그동안 먹어온 회와는 다르게 생겨 흥미를 끌었다. 훈제연어는 대형접시에 채워지자마자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낯선 음식이었지만, 매장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임이 분명했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접시에 소심하게 몇 조각 담아온 훈제연어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 순간, 나는 새로운 맛의 세계에 눈을 떴다. 짭조름하며 기름진 풍부한 감칠맛, 숨을 내쉴 때마다 짙게 느껴지는 훈연향. 회인 듯, 회가 아닌, 회 같은 희한한 맛. 처음 맛을 보는 음식인데도 정말 맛있었다. 그동안 먹어왔던 생선회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맛이었다. 소주 생각이 절로 났는데, 빕스의 메뉴판에 적힌 술은 와인과 맥주뿐이었다. 와인은 비쌌고, 맥주는 아까웠다. 이 맛있는 안주에 곁들일 소주가 없다는 사실이 몹시 아쉬웠다. 그날 나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먹어보겠느냐는 심정으로 술도 없이 훈제연어만 몇 접시를 가져다 게걸스럽게 먹었다. 결국 배탈이 나 화장실을 여러 차례 오갔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알고 보니 훈제연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만 접할 수 있는 안주가 아니었다. 훈제연어는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안주였다.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쉽게 살 수 있다는 말과 같진 않다. 훈제연어는 대형마트에서도 꽤 비싼 축에 드는 안주였으니 말이다. 갓 스물을 넘긴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은 뻔하지 않은가. 냉동 해산물 코너 앞에서 얇은 지갑을 확인하며 한숨을 쉴 때마다, 훈제연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점점 커졌다.

 

간절했던 욕망은 조금 부끄럽게 실현됐다. 돈을 모아 여자 친구와 함께 빕스에 다시 입성한 나는 비장한 심정으로 가방에서 물병을 꺼냈다. 물병에는 소주가 들어있었다. 나는 잔에 담긴 물을 모두 마셔서 비운 뒤 물병에 담아 온 소주를 빈 잔에 따랐다. 잔 옆에 훈제연어가 가득 담긴 접시가 놓였다. 나는 미어캣처럼 수시로 주위를 살피며 떨리는 마음으로 소주를 홀짝였다. 미지근해진 소주는 비렸지만, 그 비린 맛을 덮는 훈제연어의 맛은 나를 미치게 했다. 매장에 소주를 밀반입했다는 죄책감은 곧바로 사라졌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욕망의 불꽃은 한 번 꺼트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빕스에서 훈제연어를 먹고 온 다음 날이면, 전날에 배가 불러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두고 온 훈제연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다고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에 자주 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과외 등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지갑에 들어오는 날이면, 대형마트에 들러 훈제연어를 구입했다. 어쩌다 ‘1+1’으로 묶어서 훈제연어를 파는 날은 계를 탄 날이나 다름없었다. 훈제연어를 사서 좁은 고시원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행복했다.

 

문제는 양이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훈제연어는 보통 200~300g 단위로 포장돼 있고, 가격은 1만 원이 넘었다. 비싸고 배불리 먹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고민 끝에 나는 훈제연어를 여러 조각으로 잘랐다. 양이 적은 훈제연어를 최대한 오래 먹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돌이켜보니 우습고 애잔한 풍경이다.

 

훈제연어는 기름져 많이 먹으면 느끼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훈제연어를 먹을 때 케이퍼나 홀스래디시소스를 곁들여 느끼함을 달래지만, 대형마트에서 산 훈제연어를 집에서 먹을 땐 그런 걸 챙기는 일이 귀찮았다. 김치나 단무지를 곁들이는 게 내 입맛에 더 낫기도 했고. 그래도 훈제연어만 먹기는 뭔가 심심했다. 간단히 곁들일 음식을 고민하던 나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 바로 날치알이었다.

 

훈제연어로 날치알을 싸서 먹으니 식감뿐만 아니라 맛도 좋아졌다. 훈제연어가 다른 날음식과 비교해 부족한 점은 식감이다. 씹기도 전에 입안에서 무너지는 훈제연어의 식감이 좋다고 말하긴 솔직히 어렵다. 입안에서 훈제연어와 뒤섞인 날치알은 씹을 때마다 식감을 더하는 한편 감칠맛까지 보탰다. 이 조합으로 내가 지금까지 비운 소주병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가 없다.

 

곁들이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사실 훈제연어의 맛을 더하는 요소는 인내다. 훈제연어는 대부분 냉동상태로 유통되기 때문에 먹기 전에 해동이 필수다. 처음에는 그저 먹고 싶은 마음이 급해 덜 녹은 훈제연어를 씹기도 했고, 심지어 전자레인지에 넣어 익히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덜 녹은 훈제연어는 입안에서 겉돌았고, 전자레인지에서 익은 훈제연어는 값싼 생선 구이보다도 맛이 없었다. 급히 입안으로 들어간 훈제연어의 식감과 맛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훈제연어를 실수로 냉동실이 아닌 냉장실에 며칠 보관했다가 시간이 더해주는 맛의 차이를 실감했다. 냉장실에서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해동한 연어의 맛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는 맛 이상으로 훌륭했다. 마치 숙성이라도 된 듯. 그렇다. 세상에 억지로 멱살잡이해서 이뤄지는 일은 드물다. 그런 일은 반드시 부작용을 남긴다. 해동 과정 하나 때문에 맛이 확 바뀌는 훈제연어처럼 말이다. 무슨 일이든 제대로 도모하고 이루려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소주를 몰래 챙겨가는 부끄러운 짓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고, 예전처럼 대형마트에서 훈제연어의 가격을 보고 벌벌 떠는 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훈제연어를 한꺼번에 여러 개씩 구입하지 않고,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천천히 먹는 일도 멈추지 않고 있다. 맛있는 안주는 아쉬움이 남을 만큼만 먹어야 더 맛있다. 소싯적에 고시원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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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낸드플래시 시장 선도하겠다”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낸드플래시 시장 선도하겠다”

2024.04.23 11:07:48

인더뉴스 이종현 기자ㅣ삼성전자[005930]가 업계 최초로 '1Tb(테라비트) TLC(Triple Level Cell) 9세대 V낸드' 양산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습니다. AI시대가 도래한 만큼 현재 업계에서는 AI기술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고용량·고성능 낸드플래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9세대 V낸드' 양산을 시작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소 크기 셀(Cell)과 최소 몰드(Mold) 두께를 구현해 '1Tb TLC 9세대 V낸드'의 비트 밀도를 이전 세대 대비 약 1.5배 증가시켰습니다. 동시에 더미 채널 홀 제거 기술로 셀의 평면적을 줄였으며 셀의 크기를 줄이면서 생기는 간섭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셀 간섭 회피 기술, 셀 수명 연장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해당 제품은 더블 스택(Double Stack) 구조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 단수 제품으로 '채널 홀 에칭(Channel Hole Etching)' 기술을 통해 한번에 업계 최대 단수를 뚫는 공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채널 홀 에칭'은 몰드층을 순차적으로 적층한 다음 한 번에 전자가 이동하는 채널 홀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9세대 V낸드'는 차세대 낸드플래시 인터페이스인 'Toggle 5.1'이 적용돼 8세대 V낸드 대비 33% 향상된 최대 3.2Gbps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를 냅니다. 삼성전자는 이를 기반으로 PCIe 5.0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고 고성능 SSD 시장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한 '9세대 V낸드'는 저전력 설계 기술을 탑재해 이전 세대 제품 대비 소비 전력이 약 10% 개선됐습니다. 허성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Flash개발실장 부사장은 "낸드플래시 제품의 세대가 진화할수록 고용량·고성능 제품에 대한 고객의 니즈가 높아지고 있어 극한의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제품 경쟁력을 높였다"며 "9세대 V낸드를 통해 AI 시대에 대응하는 초고속, 초고용량 SSD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는 'TLC 9세대 V낸드'에 이어 올 하반기 'QLC(Quad Level Cell) 9세대 V낸드'도 양산할 예정으로 고용량·고성능 낸드플래시 개발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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