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 보험산업을 꽁꽁 싸매고 있던 금융당국의 규제가 22년 만에 풀렸다. 그동안 보험사의 상품과 가격 등에 일일이 간섭하며 이른바 ‘사감선생님’ 노릇을 더 이상 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험산업은 자율시장경체제로 접어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과연 보험사는 규제완화에 대해 웃고만 있을까? 보험사들은 어떻게 대응할 지, 앞으로 보험산업은 어떻게 변화할지 따져봤다. [편집자주]
☞ 글 싣는 순서
∎ [규제완화 後 ④] 설계사들 “고객 이익이 먼저인데…”
∎ [규제완화 後 ⑤] 보험시장 판도 변화는?
당국의 이번 규제개혁은 업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파격적이다.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회사별로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상품이 나올 것으로 전망돼 소비자들의 상품 이해도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소비자 측면에서도 보험 상품 가입 때 준비해야 할 몫이 더 커진 상황. 이런 가운데, 여러 상품을 한꺼번에 비교해서 판매하는 GA(독립판매법인대리점)의 역할이나 위상이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 업계·당국 “보험사들끼리 체력싸움 될 것”
보험 업계와 금융당국은 이번 규제개혁에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일제히 “체력 좋은 보험사가 유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은 지난 16일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험업계에 몸담은 30여년 중 가장 획기적인 변화다”며 “보험 산업의 기존 판도가 흔들릴 것이다”고 예상했다.
향후 보험업계에 불어 닥칠 후폭풍에 대해 예고한 것이다. 상품과 가격을 보험사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기초체력이 튼튼한 보험사가 유리하게 됐고,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고 획기적인 서비스 전략을 짜낼 수 있는 것도 기본 체력이 좋은 보험사여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앞으로 보험사 간 경쟁강도가 점점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상품 개발에서 금융당국의 규제도 있었지만, 보호가 되는 측면도 있었다”면서 “앞으로 100% 자율화가 되면서 상품에 대한 리스크 등을 모두 보험사가 책임지게 된다”고 말했다.
당장 내년도 보험사 CEO 경영전략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사업계획 중 상품, 타깃 고객층, 보험료 등의 변화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전략을 내놓아야 하는 만큼 보험사들끼리 눈치작전도 치열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앞으로 달라질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각 보험사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며 “체력이 좋은 보험사는 망(채널) 싸움에서 유리하니 중·소형사에 비해 이것 저것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 개혁이 장기적으로 보험사간 M&A 활성화에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보험업계에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보험사 중 별다른 차별화 전략을 내지 못한 경우 결국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남식 회장도 지난 16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보험사의 인수합병(M&A)은 보험회사 간 사업비용 등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 “소비자 보호 대책 마련은 풀어야 할 숙제”
각종 규제 폐지로 보험사는 상품개발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보험료 결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률과 표준이율 관련 제도가 폐지되면서 시장에는 지금보다 다양한가격의 보험 상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4월부터 보험사에서 경쟁적으로 보험료를 올릴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대책은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생명보험국장은 “그동안 각종 규제로 억눌렸던 모든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을 앞 다퉈 강행할 것으로 우려된다”며 “결국 보험 가격 자유화는 보험사만을 위한 대책이다”고 주장했다.
상품이 다양해지는 것에 따른 부작용도 예상된다. 예컨대, 설계사가 상품에 대해 숙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오세헌 금소원 국장은 “소비자에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보험료가 저렴한 상품이다”면서 “상품내용이 어렵고 사업비를 많이 부과하는 상품은 소비자 피해만 가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보험사마다 상품이 다르면 소비자의 보험 상품 이해도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에 가하는 금융당국의 제재방식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오세헌 국장은 “부당한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에 벌금을 강화하고 고액 과징금을 물린다고 발표했지만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면서 “보다 실효성 있는 제재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금융위 방안을 발표한 직후 실손보험 보험료가 곧 30% 인상된다는 얘기가 나와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소비자 보호 대책을 빨리 마련해 보험료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의 금전적 부담과 불완전판매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