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를 겪어 본 사람들 중에는 ‘보험처리’를 하는 대신 추정수리비(미수선 수리비)를 받는 이들이 더러 있다. 보험사는 실제 수리비용보다 적은 금액을 지급하고,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차량 수리비용을 현금으로 받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쓰면 된다. 이런 식이다 보니 추정수리비가 보험사기에 이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기와 추정수리비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올해 안으로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인더뉴스는 추정수리비와 관련한 현황과 금융당국의 대처방안, 향후 전망에 대해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
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 얼마 전 A씨는 앞차의 뒷 범퍼를 가볍게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상대방의 차량은 살짝 흠이 가는 정도였다. A씨는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를 통해 상대방 차의 수리와 대차 등 보험처리를 하고, 자신의 차량은 수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보험사 직원에게 자신의 차를 고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자, 보험사는 십여만원의 현금을 A씨 통장으로 입금해 줬다. 보험사는 A씨에게 이른 바 '추정수리비'를 지급한 것이다.
그동안 추정수리비는 보험사에서 자동차사고를 처리할 때 피해차량 차주와 보상금액을 합의보는 데 주로 이용돼 왔다. 실제 수리비용보다 적은 돈으로 시간을 단축해 사고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높은 방법이다. 당장의 수리비를 측정하기 어려운 외산차의 경우에도 추정수리비로 합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추정수리비만 챙긴 채 파손부위를 수리하지 않고,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이전에 파손된 곳까지 수리비를 청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 보상현장에서 사고차량의 차주가 파손부위를 입증하면, 가급적 수리비를 주는 관행을 악용하는 방법이다. 당국이 여기에 제동을 걸 태세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추정수리비로 인해 새어나가는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사고 당시 차량 사진 등을 모든 손보사가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차량이 가입돼 있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모든 보험사에 사고정보(사진 포함)를 공유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보험사들은 가입자의 전손 또는 추정수리비 수령여부 등의 과거 사고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추정수리비를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내거나 보험금을 여러 번 받아 챙기는 사례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손보사 보상담당자는 "사고가 났을 때 과거 차량의 파손부위나 사고처리 과정 등을 알면 이중 삼중으로 청구해 과도하게 지급되는 케이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선 선결해야할 문제가 있다. 사고차량 사진이 전체 보험사에 공유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소비자 단체의 반발도 예상되는 부분이다.
또한, 자동차보험 계약 혹은 갱신 때 (사고차량 사진공유에 대한)가입자의 동의를 받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차 사진을 보험사가 공유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한테 동의를 받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며 "가입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추정수리비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공동으로 오는 9월 자동차사고 처리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6월초부터 금융당국 자동차담당 실무진을 비롯해 학계, 업계, 유관기관 실무자들은 수시로 모여 논의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각 손해보험사에 추정수리비 현황에 대한 자체분석을 요청한 상태다. 보험사마다 추정수리비로 지급되는 전체 규모를 분석해 누수보험금 지급규모 등을 파악하고 있다.
추후 논의가 추정수리비 이중 청구를 막기 위한 시스템 개발로 귀결되면, 보험개발원이 실무를 전담하게 된다. 시스템 개발과 구축비용으로 약 10억원이 예상되며, 각 보험사가 분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국은 자차부문에 대한 추정수리비를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추정수리비로 발생하는 보험금 누수는 선의의 가입자들에 대한 피해로 직결된다"며 "자차수리 부분에 있어서 추정수리비를 없애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개선방안 중 하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