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이재형 기자ㅣ“본 건에 대해 의견 사항이 있으신 분은 자동차 전조등을 깜빡여주시기 바랍니다.”
28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의 공터. 포크레인이 아파트를 철거하는 데 또 한편에선 1500여대의 차량이 늘어서 있습니다. 초유의 ‘드라이브 스루’ 재건축 조합 총회의 현장입니다.
이날 조합원 2340명은 관리처분, 공사도급의 변경, 상가 재건축 합의 등을 의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평일 낮 시간이지만 이들은 휴가까지 쓰고 이 ‘유별난’ 총회에 와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 분양가상한제 목전인데 총회 막아 소통 ‘깜깜’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유예 기간인 7월 28일까지 입주자모집신청을 마치지 않으면 조합의 기대보다 20~30% 낮은 분양가가 적용될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개포주공1단지는 앞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일반분양 승인 등 단계가 남았습니다. 반면 ‘둔촌주공’은 분양보증까지 갔다가 분양방식부터 다시 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HUG가 책정한 분양가가 조합의 제안보다 평당 600여만원 더 낮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HUG의 제약이 없는 후분양을 하는 게 낫다는 조합원 주장도 나옵니다.
결국 둔촌주공은 6~7월 총회 후 한 달 안에 입주자 모집 신청까지 마쳐야 할 정도로 촉박해졌습니다. 개포주공1단지도 HUG 분양보증이 같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합의 결정에 따라 자기 재산 수천만원을 손해 볼 수 있는 조합원들은 속이 탑니다.
조합원들의 우려와 불안이 불거져도 조합은 총회를 열기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총회를 위해 조합원 총수의 20~50% 이상이 모여야 하다 보니 관계당국이 방역을 위해 제한해왔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불어나는 사업비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몫입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2·3월은 기다렸던 조합들도 마감이 임박해오자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3일에는 ‘신반포15차’의 조합이 야외에서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강행했다가 결국 과태료를 물고 행정 지원도 중단됐습니다.
28일 드라이브 스루 총회는 이 같은 사회적 시선을 감안해 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이 최대한 조심한 총회입니다. 유튜브로 총회를 생중계하고 안건에 이견이 있으면 차량 전조등을 깜빡여 의사표시를 하게 했습니다. 또 참석자 중 사전결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차량만 따로 구별하고 진행요원이 찾아가 투표용지를 전했습니다.
단지 조합원인 한 공인중개사는 “이번 총회에 4274명이 의결권을 행사해 83%라는 이례적인 참여율을 보였다. 조합원들이 재산권 행사에 그만큼 열망이 크다는 반증”이라며 “총회를 강압적으로 막기만 할 게 아니라 안전한 대안은 충분히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량을 이용해 인파가 몰려도 물리적 거리를 둔 게 핵심인데요. 그러나 5월 시공사 선정 총회를 앞둔 ‘한남3구역’, ‘반포3주구’는 차량을 수용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대면 운집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야외 총회를 했던 신반포15차처럼 과태료 처분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반포3주구 조합 관계자는 “개포주공1단지는 철거하면서 부지가 마련돼 차량이 모일 수 있었던 건데 우리 조합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운동장을 빌려 야외에서 진행하는 방법 등을 고심 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일단 연휴 이후 상황을 두고 보자는 입장입니다. 방역 당국의 지침이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방역으로 바뀌면 총회 제한도 완화된다는 겁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5월부터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방역지침이 완화된 후 방역기준을 잘 지킨다면 국토부 등이 총회 자체를 막는 일은 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합원 간 간격, 마스크 착용 등 매뉴얼을 점검하고 문제가 없다면 자치구청장이 허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