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김진희 기자ㅣ "농심의 중국시장 성공 비결은 제품과 마케팅의 '투트랙 전략'입니다"
농심은 자사의 중국시장 진출이 올해로 만 20년을 맞았다고 16일 밝혔다. 1999년 진출 첫 해 매출 700만 달러를 시작으로, 농심 중국법인은 올 상반기 매출 약 1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해 20년 동안 40배 성장했다.
농심에 따르면 연말까지 2억 8000만 달러의 역대 최대 실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누적매출도 상반기를 기점으로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농심 해외법인 최초의 기록이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식품의 경우 자국 식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외국 식품업체들이 성공하기 힘들다. 하지만, 농심은 한국라면으로 20년 이상 성장을 이어왔다는 평이다.
◇ ‘한국 신라면 그대로’ → 매출 20년간 40배 성장
농심 관계자가 꼽은 성공비결은 ‘차별화된 제품’과 ‘현지화 된 마케팅’으로 요약된다. 일명 ‘투트랙 전략’이다. 신라면의 매운맛 그대로 중국시장에 내놓지만, 광고나 마케팅 등은 철저하게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우선시했다.
농심의 경우 오히려 ‘한국적인 것’이 중국에서 차별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신라면·너구리 등을 본래의 얼큰한 맛·제품 규격·디자인·브랜드까지 그대로 중국시장에 선보였다.
현지화를 통해 중국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 단기적으로 매출이 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농심 브랜드가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신라면은 농심의 중국사업 대표주자로 중국 주요 대형마트와 편의점, 타오바오 등 온·오프라인에서 판매 중이다. 2018년 인민일보 인민망 발표에 따르면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명품’으로도 선정됐었다.
한국식 ‘끓여먹는 문화’도 중국에 소개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포면(包面) 문화가 보편적이다. 그릇에 면과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데워먹는 것을 말한다. 농심은 한국의 ‘끓이는’ 라면 조리법을 고수했다.
낯선 조리법 때문에 초반에는 소비자들이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심은 ‘라면은 끓여먹어야 맛있다’는 구호로 지역 곳곳에서 시식행사를 벌였다. 지금은 중국 현지 유명 라면업체들도 끓여먹는 라면 신제품을 지속 출시할 만큼 한국식 라면 조리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밖에 농심은 ‘고급 이미지’ 전략을 내세웠다. 신라면이 맛과 품질면에서 기타 다른 시중 제품과 차별화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때마침 중국 정부가 경제 개방정책을 펴면서 중국인들의 소득수준이 함께 올라갔고, 이후 한국의 신라면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났다.
농심 관계자는 “중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이 중국인들이 신라면을 찾는 가장 큰 이유다”며 “신라면의 빨간색 포장과 매울 辛자 디자인을 두고 중국인들도 종종 자국 제품이라고 여길 만큼 신라면은 중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농심은 상하이·칭다오 등 동부 해안 대도시에서 충칭·시안 등 서부 내륙도시로 영업망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커지는 온라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며 중국시장 공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 신라면배 바둑대회, 辛라면을 중국에 알린 辛의 한 수
농심이 중국시장 진출 성공비결로 꼽은 ‘투트랙 전략’의 다른 한 축, ‘현지화 마케팅’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신라면배 바둑대회(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다.
‘신라면배 바둑대회’는 1999년 농심이 중국시장에 진출한 이후 매년 이어오고 있는 마케팅 활동이다. 중국 인기스포츠인 바둑을 통해 ‘辛라면을 각인시킨 辛의 한 수’라 평가 받기도 했다는 것이 농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20회를 맞은 ‘신라면배 바둑대회’는 어제(15일) 중국 베이징에서 막을 올렸다. 이세돌·박정환 등 국가대표 기사들이 출전했다. 앞으로 5개월 간 중국·일본 기사들과 베이징·부산·상하이에서 치열한 한판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농심에 따르면 해당 대회는 제품에 대한 고집과는 반대로 중국 현지 정서와 문화를 접목한 대표적인 마케팅 활동이다. 중국 진출 당시 중국 내 바둑 인기가 높은 것을 파악하고, 관련 이벤트를 통해 농심의 인지도와 신라면 브랜드를 동시에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에 1999년 7월, (재)한국기원과 함께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창설했다. 기업의 제품명을 대회 타이틀로 내세우기는 세계기전 중 신라면배가 처음이었다.
제1회 대회에는 한국의 조훈현·이창호, 중국의 마샤오춘·창하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등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참가해 바둑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농심은 ‘중국시장 공략’이라는 대회 목적을 위해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대국장 인테리어·팸플릿·제품전시·기념품·시식행사 등으로 농심과 신라면을 홍보하는 전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열리는 대국을 관전하기 위해 중국 소비자들은 대국장이나 TV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신라면 소비로 이어졌다.
특히 중국이 처음 우승했던 제9회 대회는 중국 전역 700여개 언론사를 통해 집중 보도되기도 했다. 농심 관계자는 이때 수백억 원에 해당하는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매년 중국에서 치러지는 결승대회는 중국 CCTV·상해TV·인민일보 등 다수 중국 언론사에서 보도한다. 신라면배의 흥행이 초창기 농심의 중국 사업 돌파구가 된 셈이다.
조인현 농심 중국법인장은 “언론보도와 입소문 광고효과는 특약점·대형마트 입점 등 유통망 확대를 가져왔고, 이는 곧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며 “신라면배가 사업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신라면배는 세계기전 가운데 유일하게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가대항전이라, 선발된 기사들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창하오 중국 위기협회(圍棋協會) 부주석도 “중국 내 50여 개 기전 중 ‘한·중·일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신라면배가 가장 인기가 많고 관전열기 또한 뜨겁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