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더뉴스 박호식 기자ㅣ국내 주요 보험사들의 기후리스크 관리 수준이 글로벌 기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국내 보험사의 화석연료 관련 정책을 평가한 '2024 한국 스코어카드'를 발간하고 "국내 보험사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0.9점에 그쳤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글로벌 주요 보험사 10곳의 평균은 4.7점으로 집계돼 격차가 뚜렷했다고 지적했습니다. KoSIF는 "한국 보험산업이 국제적 흐름에 부응하기 위한 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글로벌스코어카드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 보험산업의 역할을 알리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 ‘인슈어 아워 퓨쳐Insure Our Future’에서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입니다. 한국 스코어카드는 이 글로벌 평가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국내 보험사를 대상으로 작성·발간합니다.
스코어카드는 보험사의 화석연료 관련 정책과 기후리스크 대응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업 프로젝트에 대한 언더라이팅 및 자산운용 제한 정책 여부 ▲탈화석연료를 목표로 한 단계적 축소 계획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수립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분석합니다. 이번 한국 스코어카드는 금융감독원과 김현정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10개 주요 보험사를 평가했습니다.
국내 보험사의 평균 점수는 언더라이팅(보험 인수 심사) 1.0점, 자산운용 0.8점으로 10점 만점에 평균 0.9점으로 평가됐습니다. 삼성화재해상보험이 2.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롯데손해보험(1.4점), 한화손해보험(1.3점)이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점수는 코리안리재보험으로 0.1점에 그쳤습니다.
다만 일부 긍정적인 변화도 확인됐습니다. 삼성화재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신규 화석연료 전체에 대한 제한 정책을 수립하는 등의 정책을 마련하면서 1위로 올라섰습니다. 롯데손해보험과 한화손해보험 역시 석탄 밸류체인 전반을 포괄하는 정책을 도입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KoSIF는 "국내 보험사들이 기후리스크를 인식해 정책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흐름을 보여줬으나, 전반적으로 국제적 기준과는 여전히 큰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석탄 사업에 예외 조항 두고 철수 계획도 없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은 신규 석탄발전소만 제한하거나 프로젝트 단위로 정책을 적용하고 있어, 기존 고객이나 기업 전체에 대한 보험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실제 제한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다수 금융기관이 석유와 천연가스까지 포괄하는 화석연료 정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반면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은 신규 계약뿐 아니라 기존 보유분까지 포함해 석탄·석유·가스 전반의 밸류체인 전체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탈화석연료 정책을 시행하며, 고객이나 기업 단위로 제한을 적용해 전체 포트폴리오 수준에서 전환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외조항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국내 10개 보험사 모두 신규 석탄 언더라이팅 제한 정책을 보유하고 있으나, 6곳은 예외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일부 보험사는 헤지(Hedge) 목적의 위험 분산이나 기존 계약 유지를 이유로 운영보험, 기존 계약의 증액·연장, 부속 설비 공사 등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석탄 제한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또한 기존 석탄 보험 인수 건에 대한 철수 계획이나 단계적 축소 로드맵도 마련하지 않아 알리안츠(Allianz), 악사(AXA) 등 글로벌 선도사들이 OECD 기준인 2030년, 전 세계 기준인 2040년까지 탈석탄 기한을 설정하는 것과도 뚜렷한 대비를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강윤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구원은 "국내 보험사들의 기후리스크 대응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발전용뿐 아니라 야금용 석탄 등 석탄 정책 범위를 확대해 고탄소 산업군 사각지대 해소, 석유·천연가스 포함한 전방위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 구체적인 지속가능한 에너지 투자목표 설정,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 계획 수립 및 공시 등의 정책을 통해 구조적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 확대에도 화석연료 지원에 매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보험업계는 지난 20년간 기후변화로 약 6000억달러 손실을 입었으며, 국내에서도 피해가 컸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대표적 재해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의 지급액은 2023년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 1조171억원을 기록했으며 올해 역시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럼에도 국내 보험사들의 화석연료보험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2024년 6월 기준 화석연료 보험 잔액은 182조7000억원으로 2024년 상반기만 전년 대비 30.7% 늘어나 탈석탄 정책 기조와 괴리를 드러냈다는 겁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정체 상태입니다. 같은 시점 국내 보험사들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제공한 보험 보장의 규모는 24조8000억원으로 화석연료 보험 잔액 182조7000억원 대비 13.6% 입니다. 또한 화석연료금융에서 빠져나온 투자자금이 재생에너지로 이동하지 않고 있어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자산 재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도 지적됐습니다.
이와 관련 2022년 대비 2024년 상반기 화석연료금융 투자잔액은 12조4000억원에서 11조7000억원으로 5.6% 감소했지만, 같은기간 신·재생에너지금융 투자잔액은 4조3000억원에서 4조4000억원으로 2.3% 증가하는데 그쳤습니다. 더구나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신규자금의 투입은 2023년 4000억원, 2024년 상반기 1000억원으로 점차 감소해 실질적으로는 기존 약정을 유지하는데 머무르는 수준이라고 지적입니다.
보고서는 그 원인으로 금융배출량 및 보험배출량을 포함한 구체적 감축 목표나 단계적 철수 계획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보험사 중 금융배출량을 반영해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한 기관은 세곳에 불과합니다.
강윤서 연구원은 "보험사 전체 탄소배출량의 90% 이상이 금융 배출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를 반영하지 않은 탄소중립 목표로는 실질적인 넷제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온실가스 감축 차원을 넘어, 기후정책 강화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좌초자산 리스크로부터 보험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보험산업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고 분산하는 핵심 제도"라며 "화석연료 지원 축소,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설정을 통해 기후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탄소중립 전환의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동시에 자산 건전성과 고객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