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결정장애’, ‘여자치고는’, ‘남자답다’, ‘암유발자’
우리가 아주 흔하게 쓰고, 듣는 표현들입니다. 일상에서 사소한 결정부터 큰 일까지 결정하는 데 고민을 많이 사람을 일컬어 ‘결정장애(환자)’라고 말하지요. 예전엔 우물쭈물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 할 경우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부끄럽게도 ‘결정장애’가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 혐오표현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김지혜 강릉 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가 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흔하게 쓰는 일상 혐오표현을 배웠습니다. 보통 결정장애는 스스로 혹은 남은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쓰곤 하는데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따르면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이나 ‘열등함’을 의미하는데,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결정을 빨리 하지 못 하는 사람을 장애가 있다고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니 차별적 단어로 볼 수 있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일상의 수 많은 차별적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듣는 것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최근 유통업계의 11월 세일 행사를 찾아보다가 눈에 띈 단어가 있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11월 블랙페스타(블랙프라이데이+코리아페스타) 슬로건을 ‘블치병’(블랙페스타에 가야만 고칠 수 있는 병)으로 정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15초 가량의 짧은 홍보 영상에는 병세가 깊어보이는 환자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심지어 쓰러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후 블랙페스타에서 쇼핑하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병이 다 나은 모습으로 홍보 영상이 마무리 되는데요. 사실 영상은 코믹한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불치병이라는 단어를 써야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치병의 환우 역시 롯데 블랙페스타의 소비자일텐데 그들이 롯데백화점의 ‘블치병’ 슬로건을 봤다면 영상의 코믹한 내용에 공감하고, 쇼핑에 대한 욕구가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문가도 경제적인 수익을 거두기 위한 행위에 환우나 장애인들의 어려운 형편을 빗대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상황에 처하지 않은 대다수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겠지만, 실제 환우나 장애인들도 소비자에 속하고, 누구나 이런 행사로 인해 감정적으로 다치거나 피해를 보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롯데백화점뿐만 아니라 유통업체의 공식 SNS을 살펴보면, 코리아세일페스타 홍보 마케팅에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제일 저렴하니 결정장애를 해결해준다”라든가, “너무 살게 많아서 결정장애 유발주의”라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여행을 위한 지도를 제작하고 있는 강민기 모아스토리 대표는 “소수자,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광고를 만들고, 극적인 효과를 더 불러일으키는 기획은 지양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이런 측면에서 극한 상황을 빗대어 블랙페스타가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기획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 한 선량한 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기 위한 노력,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지혜 교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애써 살피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차별에 가담하게 된다. 우리는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불평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