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인더뉴스 부·울·경

Column 칼럼

[정은정의 음식추억] 명절 부담에 마음 뒤척이기 시작한다면

URL복사

Friday, September 29, 2023, 00:09:20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추석이 즐거웠던 때는 딱 초중생 때까지였다. 

 

스무 살 명절부터는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대학생 때 IMF 외환위기를 맞아서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추석, 노점에서 어린이 양말 몇 켤레를 고르던 엄마가 기억난다. 검은 봉지에 담긴 양말은 어린 사촌동생들 것이었다. 포장이라도 제대로 할 걸, 검은 비닐봉지에 들려있던 그 양말이 부끄럽고 싫었다. 명절이어서 더 싫었다. 명절만 아니었다면 큰엄마가 조카들에게 주는 평범한 선물이었을 텐데 말이다.

 

설날과 추석 중 아무래도 명절 선물은 추석에 더 무게추가 쏠린 듯 하다.

 

찾아보니 한국전쟁이 정점이던 1952년 9월, 추석차례 지내라며 극빈자들에게 무상으로 잡곡 몇 줌과 외미(외국에서에서 들여온 쌀)를 유상으로 분배한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어떻게 해서든 명절을 지내려던 절실함이었다. 농업과 생산기반 시설은 파괴되고 구호물자로 근근이 버터야 하던 전쟁 때도 '전쟁고아'와 '상이용사'들에게 독지가들이 쌀과 밀가루를 기부하기도 했다. 물론 전쟁 중에 최고명절은 추석도 설날도 아닌 ‘크리스마스’였다. 미국이나 유럽국가 등지에서 보내주는 의연품을 받기 위해 교회나 성당 앞에 줄을 섰다. 극빈의 시대인 1950년대 대표적인 명절선물은 계란과 쌀, 밀가루였다.

 

가난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계란 열 알, 밀가루 한 됫박 도 귀하던 때, 뇌물을 받아먹는 이들도 많았다. 말단 공무원은 시민을 쥐어짜고, 중견 공무원은 말단 공무원과 시민을,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은 자기 이하 모두를 쥐어짜 선물을 뜯어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은 "만약에 명절을 핑계로 선물을 증수하는 자가 있다면 엄격히 처벌"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지만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서 오히려 명절 선물은 부정청탁의 주요 수단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원조경제에 의지해 근근이 살아가던 1960년대 초반에 백화점 상품권까지 등장한다. 명절마다 백화점 앞에 대절 택시를 불러다 선물상자를 잔뜩 실어 고관대작들에게 실어나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아예 상품권이 명절선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진 자들의 신풍속도일 뿐 사람들은 시장에서 사과와 북어, 밀가루와 쌀, 고무신, 수건을 명절 선물로 골랐다.

 

1970년대 본격 수출경제시대에 접어들어 명절 보너스와 명절선물을 지급하는 문화가 생겼다. 큰 회사들은 아예 전세버스를 대절해 노동자들을 실어다 주고 실어 오기도 했다. 노동력이 부족하던 때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갔다 부모 품이 좋아 그 길로 주저앉을까 봐 올라오는 버스도 맞췄다는 후문이다.

 

이때 명절선물로 가장 인기있는 상품은 설탕, 조미료,식용유, 커피, 비누, 치약, 과자세트였다. 특히 설탕과 조미료의 인기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충무로 인쇄회사에서 근무하던 삼촌이 명절선물로 설탕 한 부대를 받아 형수인 엄마에게 가져온 장면이 지금도 또렷하다. 설탕 선물이 워낙 인기였던지라 명절만 끝나면 한국 음식이 지나치게 달아졌다며 설탕 소비를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질 정도였다.

 

인스턴트커피 선물세트도 인기였다. 커피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접빈음료'였다. 당시 집집마다 '슈거볼'이라 하여 설탕과 커피프림을 담은 전용 도자기가 있을 정도로 귀한 물품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올 때나 커피를 대접하던 때였으니 자기 돈을 내서 사기보다는 선물을 받으면 요긴했다.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여 호황을 맞이했다. 이즈음 백화점에 고가의 선물세트가 등장한다. 고급갈비세트, 인삼(홍삼)과 양주, 수입과자와 통조림, 고급 양복원단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때 백화점마다 상품권 판매는 물론 배송 서비스까지 제공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1970년대 후반까지도 식용유는 여전히 귀품이었다는 것이다. 1971년에 첫 출시된 '해표식용유'는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고 기름 요리는 특별한 행사 음식이었다. 명절에 전을 부치거나 튀김을 하고 난 기름이 아까워 두고두고 쓸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식용유 선물이 인기였다. 주고받는 사람 모두 유용했지만 이제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식용유가 꼽힌다. 명절에 전을 부칠 일도 줄었고 음식을 예전만큼 해 먹지도 않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서 육가공 식품인 햄과 참치캔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도시락 반찬으로 활용도가 높고 보관이 편한 데다 햄과 참치가 고가의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캔햄과 캔참치 선물세트의 인기는 여전하다. 보관성이 좋고 해 먹기 간편해서다. 다만 1인 가구 증가로 딱 한 번 먹을 정도로 깡통의 크기가 작아지고 염도가 낮아졌다. 쓰임이 많아 명절에 받은 햄참치 선물세트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자주 올라온다. 싸게 식재료를 장만하려는 수요도 맞물려 있다.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의 여파로 '신토불이운동'과 우리 농산물로 구성된 선물을 주고받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고 시민들의 호응도 컸다. 하지만 1997년 잘나가던 한국 경제가 무릎이 꺾여 명절 상여금은커녕 임금이 밀리는 회사가 속출했다. 유통업계도 발맞춰 'IMF세트'를 갖추었다. 손부끄럽다고 서로 잘 주지 않던 양말과 수건, 치약세트가 명절선물로 다시 소환됐다. 크기는 크지만 값도 저렴한 김세트도 인기를 모았다. 심지어 설날 선물로 '빨간내복'이 인기를 끌었다. 빨간내복을 입던 시대를 떠올리며 이까짓 시련은 이길 수 있다고 여긴 것일까.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23년 추석. 팬데믹 여파가 여전하고 경기불황까지 겹쳤다. 여기에 기후변화로 여름철 날씨도 받쳐주질 않아 농산물이 무르고 터져 농민들은 건질 것 없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명절이라고 철없이 좋기만한 철부지들이 많아야 살기 좋은 세상일 텐데, 올해 추석엔 왜 이리 어깨가 무거운 것인지.

 

-추석 차례상에서 깨송편보다 콩송편에 손이 가면서 성인이 되었음을 느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명절을 기다리기보다 부담스러워지면서 어른의 삶이 시작된 듯하다. 어느덧 명절연휴가 휴가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그럼에도 명절을 앞두고 주변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에 마음 뒤척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아예 기성세대가 된 것이다.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nglish(中文·日本語) news is the result of applying Google Translate. <iN THE NEWS> is not responsible for the content of English(中文·日本語) news.

배너

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배너

자사앱 키우는 식품업계…수수료 줄이고 데이터 잡는다

자사앱 키우는 식품업계…수수료 줄이고 데이터 잡는다

2025.05.01 07:00:00

인더뉴스 장승윤 기자ㅣ식품업계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사앱 육성이 핵심 전략으로 떠올랐습니다. 배달앱 수수료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충성 고객 확보와 고객 데이터 축적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달앱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배달 플랫폼 수수료 인상으로 가맹점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 1위 배달의민족은 배달에 이어 이달 14일부터는 포장 주문에도 중개 수수료 6.8%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요기요도 포장 주문 시 7.7%의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측은 서비스 품질 향상 및 운영비 증가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자영업자와 소비자들의 반응을 냉랭합니다. 포장 주문까지 수수료 부담이 늘어나면서 대안을 찾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식품기업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자사앱 혜택을 강화하며 소비자 유입을 적극 유도하고 있습니다. 배달앱의 강점이 편리성인 만큼 자사앱도 사용자 편의성 강화를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메뉴 주문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개편하고 멤버십 별 할인 혜택을 세분화했습니다. 소비자가 할인율을 체감할 수 있도록 프로모션 빈도도 높였습니다. 새단장 효과는 즉각 나타났습니다. bhc가 지난 2월 새롭게 선보인 뉴 bhc 앱은 출시 한 달 만에 회원 수가 4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3단계 멤버십 서비스를 도입하고 퀵오더 기능, 간편 선물하기 등 기능을 추가해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입니다. 리뉴얼 후 한 달간 자사앱을 통한 주문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배 증가했습니다. 같은 시기 출시한 신메뉴 콰삭킹 인기도 앱 활성화에 한몫했습니다. 실제 콰삭킹 출시 이후 앱 주문량은 2배 이상 늘었습니다. bhc는 최근 선릉역 인근에 직영 매장 오픈과 함께 매장 내 QR 방식의 테이블오더 시스템, 자사앱 사전 예약 시스템을 도입하며 앱을 활용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bhc 관계자는 "치킨 업종 특성상 배달 주문 비중이 매우 높은데 배달앱 수수료로 인해 가맹점주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개 수수료가 없는 자사앱을 강화해 가맹점주의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배달앱 수수료 증가에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운 공공배달앱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신한은행 등과 출시한 공공배달 서비스 '땡겨요'는 소비자에게 최대 30%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수수료는 2% 이하입니다. 기존 3대 배달앱 수수료(최대 9.7~9.8%)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입니다. 땡겨요는 최초 가입자와 가입 후 주문 이력이 없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두 번째 주문까지 사용할 수 있는 5000원 할인 쿠폰을 증정합니다. 서울시와 가맹 계약을 체결한 BBQ는 이달 30일까지 3000원 할인 쿠폰을 추가 제공해 총 할인금액을 8000원까지 높였습니다. BBQ 앱에서 이달 30일까지 신메뉴 마라핫 주문 시 '누누씨 부적카드' 증정 프로모션을 진행 중입니다. 신메뉴 효과에 방문객도 증가세입니다. 지난 2월 BBQ가 앱과 웹사이트에서 진행한 랜덤 치즈볼 증정 프로모션 3일 동안 자사앱 매출은 전주 동기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 같은 기간 신규 가입자는 3만명 늘었습니다. 교촌치킨 역시 자사앱 활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4월 한 달간 월 2회 이상 주문해 KING 등급을 달성한 회원 중 추첨해 신메뉴 교촌후라이드 모바일 교환권을 제공합니다. 교촌치킨은 총 3단계로 멤버십을 운영하며 구매 포인트 2% 적립, 배달·포장 할인, 치즈볼 교환권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치킨 프렌차이즈업계는 자사앱이 가맹점 수익을 높이는 동시에 배달앱 의존도를 낮춰 독과점 구조를 견제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카페 프렌차이즈도 자체 앱 활용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디야커피는 올해 1분기 자사앱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전년 동기보다 약 9% 증가했습니다. 앱 편의성을 개선하고 고객 참여형 프로모션을 확대한 게 주효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픽업 주문을 한 고객 중 선착순 600명에게 아메리카노 즉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디야커피는 자사앱을 통한 주문이 외부 플랫폼 대비 가맹점주들의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수익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독 서비스도 선보입니다. 오는 5월 1일부터 베타 테스트 형태로 론칭해 고객 맞춤형 혜택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식품기업과 가맹점주가 배달앱에 지출하는 수수료는 주문 당 10~20% 수준입니다. 가맹점주 입장에서 배달앱에 입점하면 빠르게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대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부담도 함꼐 가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자사앱 강화는 이러한 배달앱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적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자사앱을 활용하면 이용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립할 수 있다"며 "자사앱이 활성화되면 기업이 고객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가능하고 이를 신메뉴 개발에 활용하는 등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사앱을 키우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