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스타일팀] 당차게 시작한 ‘아내와 외식하기’ 코너도 벌써 12회를 달리고 있다. 스스로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가득 메우는 맛집 블로그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맛집 소개 기사보다 훨씬 진솔하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글을 매 회 내고 나면 찬반이 극명하게 나뉜다. 특히 일부 반대파(?) 독자들 가운데 인더뉴스 편집장에게 “커플천국, 솔로지옥을 조장하는 글을 왜 실어 실어주느냐”는 항의까지 했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하지만, 잘 읽고 있다는 평이 많으니 이 코너도 생존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애초의 기획의도는 이렇다. 내 돈 주고 사먹은 맛집 평. 꼭 최고의 맛집이 아니더라도, ‘평타’ 내지는 ‘가성비 굿’ 소리를 듣는 동네 맛집까지 포괄해 기행을 다녀보자는 취지였다. 꼭 맛이 전부는 아니다. 필자도 남자지만, 남자들끼리 맛집 찾아가서 파스타 먹고 와인 한 잔 하는 게 좋나. (좋은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아내와, 애인과, 가족과 함께 가야 더 의미가 있고, 돈 내고 먹은 보람(내지는 ‘가오’)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졌다. 매일 같이 ‘아내의 갑질’에 시달리고(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완전한 갑이 어디 있나. 누구나 굽신거리거나 곤란한 일은 있게 마련이다), 성과의 압박에 스트레스 받는 남편들, 아내한테 폼 한 번 잡아보자고 이 말이다. 그냥 폼만 잡으면 아내에게 ‘말발’이 서지 않으니, 맛집을 핑계로 멘트 한 번 쳐보고 말이다. 서설이 길었다.
미안하지만 오늘도 염장질의 농도가 짙다.(이제 좀 중독이 됐으리라). 얼마 전 아내와 파스타 먹으려고 30㎞를 돌아서 갔다. 2시간이면 해결될 일이 5시간 정도 걸렸다. 양재 인근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아내는 서촌에서 프랑스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분당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을 할 일이 생겼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당연히 아내와의 약속을 미루는 것이 맞다. ‘양재→분당→집’은 57㎞. ‘양재→서촌→분당→집’은 90㎞다. 게다가 나는 ‘뚜벅이’다. 2시간 이상 더 걸렸다. 아내는 만삭이다. 임신 7개월. 형님들이 우스갯소리로 “임신할 때 안 해준 것은 평생간다”고 하는데, 평생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갈굼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사랑하지. 그래서 결국 “어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3호선 지하철에 올랐다.
엘라디(Elle a dit). 가게 이름이다. 불어 조금 하는 사람은 금세 아는 뜻이다. “그녀가 말했다.” elle이 영어 she랑 같은 말이고, a dit는 dire(말하다) 동사의 과거형이라는 프랑스어 교과서에서의 문구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 보니, 아직은 젊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이내 나를 테스트한다. “오빠 이거 뭔 뜻이야.” 프랑스 가게니깐 프랑스어일테고, 이 사람 알려나 하는 심정일까. 어쨌든 당당하게 말해줬다.
여기는 샐러드가 양이 많고 맛이 좋다. 특히 첫 접시는 우아한 여자 사장님이 서브를 해줬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시고 오신 느낌이 확 든다.(확인은 안 해봄.) 아내에게 그 옛날(?) 2006년 스위스에서 열렸던 대학생 토론대회 참가기를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떻게 놀았으며, 프랑스 녀석이 있어서 같이 프랑스로 넘어가, 걔네 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말이다. 교과서에서 들을 법한 “서양에서는 초대 받았을 때 감사 표시를 많이 해야 하고, 음식을 많이 먹는 게 미덕”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는 말도 곁들여 줬다. 몇 번 들었을 텐데 지루하지 않아하는 아내가 고맙다.
바게트가 들어 있는 양파 수프도 시켰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옛날에 나는 양파 수프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멀건 국 같아서. 그런데 나이가 되니, 이상하게(?) 양파 수프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닭요리, 아내는 파스타를 시켰다. 닭요리는 크림 베이스 파스타를 베이스로 나온다. 얼핏 먹어보면서 헷갈렸을 정도. 맛은 좋다.
웬일인지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아내는 밥값을 내버렸다. “웬일이냐”는 말이 입밖에 나왔지만,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냥 내고 싶었다고 한다. 빠듯한 살림에 근사한 외식을 잘 못하고 간만에 분위기 좀 내서 기분이 좋은 건가. 괜히 더 미안하다. 어째 11월 말에 있는 아내의 생일을 감안해 뭔가 생각하는 아이템이 있으려나.
데이트 이어가기
서촌 지역은 골목 골목에 괜찮은 숍이 많다. 함께 걸어다녀 보는 것 자체로도 좋은 데이트가 될 것이다. 우리 부부가 데이트를 한 날에도 동네에서 거리 공연이 있었다.
서촌 지역에서는 빈대떡과 칼국수 등으로 유명한 ‘체부동잔치집’도 있다. 파전, 두부김치, 김치전, 잔치국수, 비빔모밀, 들깨수제비 등 아무거나 시켜도 다 맛있다. 가격도 싸다. 다만 사람이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비빔국수를 가장 좋아한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 다음으로 비빔국수를 맛있게 하는 사람은 이곳 주방장 아닐까 싶다.
* ps 1. 이 글을 쓰고 며칠 뒤, 아내는 구두가 갖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 ps 2. 농담 반 진담 반 하나 하자. 흔히들 남녀 이성친구에게 구두 사주면 도망간다고 하는데, 또 사주면 안 도망간다. 결혼 한 뒤에는 그 돈이 그 돈이니 뭐 중요하지 않겠고.
* 엘라디(Elle a dit)
- 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동 109
- 전화: 02-6677-0434
* 체부동잔치집
- 주소: 서울 종로구 체부동 190
- 전화: 02-730-5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