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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조성원의 나·혼·다] 황량한 겨울 밤, 혼술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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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February 27, 2018, 11:02:10

한 잔의 위스키로 녹여내는 도시의 겨울

[조성원 칼럼니스트] 3월을 코 앞에 두고 있지만, 도시의 겨울은 황량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지금 딛고 있는 곳이 허공인지 땅인지도 모른 채 숨 가쁘게 지내다 보면, 늦은 시간 잠자리에선 막을 수 없는 공허함 속에 숨 쉬는 육신만 느낄 뿐이죠.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위안이 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혼술하기’입니다. 가까운 이들과 전직 대통령으로 시작해 직장 상사를 거쳐 반려자에 이르는 흉보기 코스를 완주하며 나누는 소주 한 잔도 좋죠. 하지만 때론 나 홀로 앉아 목 너머로 흘려 넣는 가슴 뜨거워지는 위스키 한 잔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 한잔을 위해 ‘바(Bar)’를 찾았습니다. 단골까진 아니더라도 종종 가는 곳이 있긴 합니다만, 항상 일행과 함께 했기에 혼자는 좀 어색하더군요. 해서 한 군데 ‘뚫어보자’는 생각에 가본 적 없는 곳을 검색해 봤고, 연남동에 자리한 한 바를 낙점했습니다.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꽤 걸어 초록창 지도에 나온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습니다. 헌데 바로 옆집에서 방송 촬영 준비가 한창이더군요. 혹시 요즘 최고 인기인 ‘도깨비’? 김고은, 유인나! 시크하게 걸으며 곁눈질로 쳐다보니 ‘도깨비’와 같은 방송국의 ‘인생술집’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잠시 경박해진 마음을 추스른 후 목적지의 입구를 찾았습니다. 간판이랄 게 없이 흑판에 가게 이름을 써 놓은 게 다더군요. 조금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있겠습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니 전체적으로 그렇게 어둡지 않은 분위기에 검은 느낌의 공간이 나옵니다.

 

테이블은 없고 오직 바 좌석만 있는 것이 독특합니다.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가 본 바 중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진열장엔 익숙하지 않은 위스키들이 빼곡히 차 있습니다. 싱글몰트 라인업이 좋은 곳이란 사전 정보가 맞는 듯하군요. 지난주 고기집도 그렇더니만 이번에도 제가 첫 손님입니다. 부디 제 뒤로 손님이 많이 들어와 ‘첫 손님이 별로라 오늘은 공 쳤다’는 얘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메뉴판이 없습니다. 바텐더에게 물으니 정확히 원하는 메뉴가 있다면 그걸로 준비해주고, 아니면 취향에 맞게 추천해주는 식으로 주문을 받는다는군요. 단골집이 아니니 늘 마시던 걸 주문할 수는 없고(풉!), 먼저 마셔보지 않은 싱글몰트 위스키로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피트향이 강한 ‘아드벡’ 10년으로 드려 볼까요?”

“아우, 좋죠. 근데 피트향이 먼가염?”

 

‘피트(Peat)’는 식물퇴적층을 말합니다. 화본과식물이나 수목질의 유체가 생물화학적인 변화로 인해 석탄화 되지 못하고 땅 속에 축적된 것이죠. 보통 위스키에서 ‘스모키’ 하다거나 ‘그을린’ 것 같은 향이 강하게 나면 이 피트의 영향이 큰 것입니다.

 

왜 위스키에서 이런 향이 나느냐. 일단 위스키를 만들려면 보리에 싹을 틔워 맥아로 만들고, 맥아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 열을 가해 건조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보통 석탄을 떼워 쓰는데, 이 때 석탄 대신 피트를 쓰면 피트의 향이 맥아에 베어들어 몰트위스키의 독특한 향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친절한 설명 뒤에 잔을 받아 드니 과연 강렬한 ‘탄내’가 코끝을 강타하는 것이 가히 비염 환자도 낫게 할 것 같습니다. 이 향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들 갈린다는데, 전 완전 ‘호(好)’였습니다. 입 안에 머금고 넘길 때까진 또 강렬함 못지않은 부드러움으로 감싸주는 것이, 앞으로 또 찾을 듯 합니다.

 

입맛을 다시며 두 번째로 마실 것을 고르려니 진열장 한 곳을 브랜디가 점령하고 있더군요. 예전 레스토랑 겸 바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할 때 마셔본 기억이 나 반가운 마음에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아르마냑은 어떠세요?”

“이름만 들어도 좋네요. 근데 아르마냑은 또 먼데염?”

 

보통 브랜디라 하면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술을 말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포도를 원료로 하죠. 아마 브랜디 하면 ‘꼬냑’이란 이름이 많이들 떠오르실 텐데(저 또한 그랬습니다), 이는 프랑스 꼬냑 지방에서 만든 브랜디를 통칭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네, 아르마냑은 아르마냑 지방에서 만든 브랜디인거죠.

 

아르마냑을 준다더니 먼저 컵에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그리곤 ‘샤보 나폴레옹’을 꺼내 잔에 따릅니다. ‘섞어 마시는 건가?’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뜨거운 물이 든 잔 위에 아르마냑 잔을 비스듬히 앉힙니다. 적당히 데워 마시는 게 좋다는 군요. 이렇게 또 하나 배웁니다.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 잔을 들어 맛을 봅니다. 은근한 과일 향을 느끼려면 확실히 약간 온도를 높인 상태가 좋은 것 같더군요. 술이란 참 신기하죠. (거칠게 말해)맥주를 증류한 위스키와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가 묘하게 맛과 향이 비슷하니까요. 그 와중에 확실히 구분되는 그들만의 특징도 있고요.

 

위스키 브랜디(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마왕의 팬)의 즐거움을 맛보며 입성한 지 1시간을 훌쩍 넘기는 동안 손님은 여전히 저 뿐이라, 친절한 바텐더분을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술과 관련된 흥미로운 얘기를 듣던 중 깜짝 놀랄 만한 걸 보여주더군요.

 

알코올 도수 96% 보드카 ‘스피리터스’. 이 정도면 술이 아니라 그냥 정제 알코올이라 봐야할 것 같은데, 태어나 본 가장 극악무도한 술이었습니다. 테이스팅을 청할 엄두도 나지 않더군요.

 

보드카니만큼 칵테일용으로 간간히 쓴다곤 하는데, 문득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곤 하는 제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 스트레이트로 한잔 하면 마시자마자 세상모르고 뻗어버리지 않을까요. 안 깨어나면 큰일입니다만.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마시고 있는 술부터 21세기 초의 모던 바 붐에서 현재의 다채로워진 바 문화, 제임스 본드가 즐기는 ‘섞지 않고 흔든’ 마티니의 영화와 원작소설 간의 차이점 등등, 참 많은 걸 알고 있더군요.

 

그의 박학다식함에 감탄하면서, 새삼 생업이 됐건 취미가 됐건 뭐든지 하나라도 ‘제대로’ 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익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게으름과 만나며 안일함을 벗 삼고 사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에디뜨 삐아프와 쳇 베이커를 BGM 삼아 여전히 저 혼자인 와중에 친구가 찾아와 같이 자리했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혼자 한 체험기를 독자여러분에게 보여드려야 하기에,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끝까지 혼자 있었던 것 마냥 시침 떼기엔 제 한 떨기 순결한 양심이 허락지 않아서 말이죠.

 

이젠 만으로 해도 삼십대의 딱 중간에서, 일과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가진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철이 덜 들긴 했지만 어쨌건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도시인인 제 자신에게 앞으로도 종종 따뜻한 한잔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군요.

 

집으로 돌아와 피트향과 과일향을 떠올리며 잠을 청했습니다. 항상 뒤척이던 다른 밤들과 달리 모처럼 편안히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선 ‘트와이스’ 멤버들과 함께 놀이공원에서 신나는 데이트를... 철들려면 멀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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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칼럼니스트 기자 mirip@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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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은의 보험키워드] 보험료 냈는데, 보험사가 사라진다면

[서지은의 보험키워드] 보험료 냈는데, 보험사가 사라진다면

2025.05.11 10:37:57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우리나라에는 몇 개의 보험사가 있을까? 2024년 11월을 기준으로 영업 중인 보험회사는 생명보험회사가 22개 손해보험회사가 31개로 총 53개의 보험회사가 있다. 보험회사가 완전히 무너진 사례는 아직 없지만 사실 지급여력 부분에서 건전성을 의심받는 보험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 M 손보사 사태로 인해 가입자의 불안 및 보험사를 향한 불신의 시선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이용한 일부의 갈아타기 유도 영업이 소비자의 혼란을 초래해 현장에서 일하는 설계사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인생에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가입한 내 보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보험사가 사라진다면 가입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보험사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지수 중 RBC 비율이 있다. Risk-Based Capital, 줄여서 RBC라 부르는 이 지수는 보험회사의 다양한 리스크를 고려해 요구되는 자본 계산 방식으로 쉽게 풀면 '지급여력'을 뜻한다. RBC 지수는 보험사의 가용자본을 손실 금액(요구 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보험 가입자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을 쌓아놓았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당연히 RBC 비율이 높을수록 재무 건전성이 좋다. 가령 RBC 비율이 200%라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자본이 감독 당국이 제시한 기준의 2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면 100% 미만일 경우에는 그만큼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최근 논란이 된 M 손보사의 사태를 되짚어보자면, M 손보사는 2022년 4월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이후 예금보험공사가 경영관리 체제로 여러 차례 매각을 시도해 왔으나 무산되었고,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자본이 마이너스 184억원이 되어 완전 자본 잠식 사태에 빠졌다. 당시 M 손보사의 지급여력비율은 35.9%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는커녕 법정 기준인 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재무 건전성이 극도로 떨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의 시장 매력도가 크게 하락해 인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매각은 번번이 성공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고용 승계 문제를 두고 M 손보사의 노조와 인수 후보 회사 간 갈등까지 깊어지면서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에서도 해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매각에 실패한 M 손보사가 청산이나 파산의 길을 걷게 될 경우 '124만 명이 넘는 가입자의 보험 자산은 어떻게 되는가?'이다. 게다가 사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설계사들이 지금도 보험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M 손보사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나아가 보험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어 소비자의 불안은 더 깊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M 손보사에 오랜 기간 보험을 유지해 온 가입자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가장 기대하고 싶은 가능성은 과거 리젠트 화재보험사의 선례처럼 계약이 타 보험사로 이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M 손보사의 경우 손해율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 계약 이전이 쉽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끝까지 버티다 보험사가 파산이나 청산의 길을 밟게 되면 당국의 '예금자보호법'에 기대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보험 자산이 아닌 ‘해지환급금’을 보전해 주는 제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며, 무해지나 저해지 보험 상품은 예금자보호법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다. 역시 건전한 보험사를 통해 새로 보장자산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내게도 무척 쉽지 않은 일이다. 중도해지의 손해는 가입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 가입하게 되면 나의 보험 나이와 병력 유무에 따라 이전보다 높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가입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가장 손해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차악을 피하는 것이 정치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보험이 정치도 아닌데, 최선이나 차선이 아닌 최악을 피하라고 조언해야 하는 상황이 참 씁쓸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보장자산을 관리하는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정도는 꼭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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