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6명 이상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이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특히 비급여 진료 항목 중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등의 경우 특약형 상품으로 따로 가입하도록 바뀐다. 특약형에 가입하면 보장범위가 넓어지는 대신 자기부담금이 높아진다.
실손의료보험금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 보험료를 환급해주고, 보험금 수령 실적에 따라 갱신할 때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방안도 고려된다.
보험연구원은 28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양호 한양대학교 교수는 '상품구조개선, 단독형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작년 말 기준 실손보험 보유계약이 3266만건으로 가입률이 매우 높지만, 손해율이 124.2%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병원들이 실손보험을 의료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손해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최 교수는 “과잉진료와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가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악화됐다”며 “지금처럼 보험료 인상이 되풀이 될 경우 향후 고령층 월 보험료가 수 십만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또 최 교수는 현재 보험사가 손해율 관리를 위해 다른 보장(예 사망보장)과 함께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는 관행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손보험만 단독으로 가입하고 싶은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작년 말 기준 단독형 실손보험의 가입자는 전체 중 3.1%에 불과하다.
이에 최 교수는 실손보험을 '기본형'과 '기본형+특약'으로 구분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증식치료 등을 하나의 특약으로 묶어 판매하는 것. 실손보험 가입자의 과도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특약의 자기부담비율은 기존 20%에서 30%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단독형 실손보험 판매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단독형 실손보험은 1만~3만원대로 특약형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면서 “인터넷과 모바일, TM 등 다양한 채널에서 가입할 수 있도록 활성화 돼야 하며, 상품 판매가 감소되지 않도록 연납(또는 연 2회)으로 납입하는 상품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실손보험의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거나, 미미한 경우 보험료를 환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어진 발표에서 '보험료 차등제·비급여 관리'에 대해 발표했다.
정 연구위원은 “보험료 차등제도는 가입자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손해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용돼야 한다”며 “실손보험 가입자 중 무사고·무청구자 대상 보험료를 환급해주거나 할인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이다”고 설명했다.
보험료 차등제도의 경우 이미 미국과 독일, 홍콩, 영국, 말레이시아 등의 주요국에서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가입자가 1년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평균 2~3개월, 최대 4개월치의 납입보험료를 환급해주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보험사는 보험료 환급 재원을 위해 별도 준비금을 적립한다.
영국은 무사고자와 무청구자에 대해 보험료를 할인해주고 있다. 일정기간(1년) 동안 가입자의 사고 또는 보험금 청구실적에 따라 갱신 때 보험료 할인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가입경력, 사고이력 등으로 이전 보험금 청구(또는 사고)경력을 반영해 보험료를 결정한다.
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실손보험도 보험료 차등 할인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자동차보험처럼 갱신 때 보험금 수령실적에 따른 보험료 할인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며 “다만, 병원을 반드시 가야 하는 중증질환자의 경우 보험료 차등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연구위원은 비급여의료항목의 코드 표준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도수치료 등의 비급여 항목에 대해 의료기관별 청구비용이 3배~1700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민영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의료수가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급여 항목 표준화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급여 진료비용에 대한 조사, 분석 등을 공개하는 등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보험사도 비급여 관련 자체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연구위원은 “심평원이 의료기관에 비급여 표준화 정보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촉구하고, 보험사는 비급여 진료비 청구에 대한 전문심사기관을 구축해야 한다”며 “여기에 비급여 진료 수가와 진료량에 대한 적정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는 이번 실손보험 개편안에 대해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 등 보건당국의 관리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사의 실손보험 상품에 대해 개편하는 것보다 (실손보험)이용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한 손보사 관계자는 “일부 손해율이 높은 진료항목에 대해 특약으로 따로 가입해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은 좋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도수치료 등에 대한 비급여 항목에 대해 천차만별인 가격의 범위를 정하지 않으면 상품개선으로 한계가 분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번 실손보험 공청회 이후 의견 수렴을 통해 12월 중순경 실손보험 개편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