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옥찬 심리상담사ㅣ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연출 김재현·신중훈, 극본 최수진·최창환)에서 천지훈(남궁민 분) 변호사의 수임료는 말 그래도 단돈 1000원이다. 누구나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변호사이다. 그런데 변호사 수임료가 1000원이라는 소재는 돈이 최고인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MZ세대에게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분노하는 MZ세대의 공정에도 맞지 않다.
그런데 <천원짜리 변호사>를 보다 보면 우리 동네에도 천지훈 같은 변호사 한 명 즈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변호사 수임료가 1000원이어서가 아니다. 천지훈 변호사는 사회경제적으로 특권층이다. 그럼에도 가진 것 별로 없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어울리면서 개성이 강한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르시스트는 멋지다.
사람들의 성격 중에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은 건강하지 않은 자기애성과 비슷한 면이 있다. 주변에 나르시스트가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위 '참 재수 없고 밥 맛 떨어지는 인간'이다. 이상심리학 책을 펼쳐보면 성격장애 파트가 나온다.
그중에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것이 있다. 성격장애는 성격의 어떤 특성이 너무 지나쳐서 일상적인 삶의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부적응적인 상태이다. 자기애성을 영어로 말하면 나르시시즘이다. 그래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NPD)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재수 없는 나르시스트이다.
자기애를 일컫는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한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딱 반하여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 자신만을 쳐다본다. 여기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의미는 자신의 주변 환경이나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자아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르시스트인 자기애성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지 못하고 자기 자신밖에 모른다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사람들이 MZ세대의 성격적 특성을 이야기할 때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라는 단어들을 쓰기도 한다. 보통 이러한 단어들이 MZ세대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회사나 조직에서 MZ세대에게 공동체성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멋대로 한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인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성격 특성 중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것이 꼭 나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상담실에서 만나는 MZ세대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다 보니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상담사로서 너무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기보다는 차라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는 서로 대조되는 두 명의 나르시스트가 보인다. 한 명은 주인공인 천지훈(남궁민 분) 변호사이다. 주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듯 한 진한 선글라스에 명품 옷을 입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태도를 보면 나르시스트이다. 게다가 어디에서나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못해 거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천원짜리 변호사> 3~4화에 등장하는 천영배(김형묵 분)이다. 큰 회사의 임원인 천영배는 매우 교만하여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안하무인 태도를 보인다. 천영배는 주변 사람을 경제력에 따라 나누어 강자에게 굽실거리고 약자에게 강하다 못해 폭력적이고 악마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천영배는 나르시스트이면서 전형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이다. 둘 다 나르시스트이지만 한 명은 개성 강하고 멋진 반면 다른 한 명은 성격장애자이다.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인 DSM-5를 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 진단 기준이 나온다. 대략 몇 가지 진단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사람들 앞에서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이나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금세 알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과도한 숭배를 요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특별히 호의적인 대우를 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기대에 대해 자동적으로 순응하기를 불합리하게 기대한다.
무엇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대인관계에서 매우 착취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의 결여되어서 타인의 느낌이나 요구를 인식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훈(남궁민 분) 변호사와 천영배(김형묵 분)는 자기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르시스트이다. 두 사람 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속된 말로 재수 없어 보인다. 검사였다가 변호사 시보를 하는 백마리(김지은 분)의 눈에는 둘 다 때려주고 싶고 재수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러나 백마리는 천지훈 변호사를 신뢰하고 따르려고 한다. 천지훈 변호사가 나르시스트이지만 타인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멋진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천지훈이 허름한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태도를 보이지만 주변 사람들과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천지훈 변호사는 나르시스트이면서도 사람들을 공감하고 배려하면서 진정성 있게 대한다. 주변에 천지훈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다. 멋지고 개성 강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반면에 천영배는 나르시스트이면서 자기애성 성격장애이다. 항상 피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주변에 서로 신뢰하는 인간관계가 없다.
MZ세대들이 자신을 돌아볼 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다면 나르시스트일 수 있다. 다만, 사회경제적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고 공감과 배려로 존중할 줄 안다면 천지훈과 같은 멋진 나르시스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망각하면 언제든지 천영배와 같은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될 수가 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면으로 타인의 차가운 시선에 주눅 들지 말고 오히려 타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멋지고 당당하고 개성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