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제해영 기자ㅣ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채한 교수 연구팀이 한국 고유 질환인 ‘화병(Hwabyung)’의 임상적 특징을 세계 최초로 과학적으로 규명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경희대 김종우 교수팀, 경성대 이수진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바이오피지코소셜 메디슨(BioPsychoSocial Medicine)' 10월 30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고 부산대는 4일 밝혔습니다.
‘화병’은 오랜 기간 해소되지 못한 분노와 억눌린 감정이 누적돼 신체와 정신에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기준 DSM-5-TR에도 등재된 대표적인 문화정신의학적 증후군입니다.
이번 연구는 화병의 정신병리적 기전을 과학적으로 입증함으로써, 그동안 상징적 질환으로만 여겨졌던 화병을 객관적 임상연구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연구팀은 화병 환자 118명을 대상으로 한의학의 음양심리 이론을 표준화한 ‘사상성격검사(SPQ)’를 통해 행동·인지·정서 특성을 분석했습니다.
SPQ는 행동 태도(SPQ-B), 인지 양식(SPQ-C), 정서 반응(SPQ-E) 세 가지 척도로 구성되며, 화병 환자에게서 ▲높은 행동 과민성·충동성(SPQ-B) ▲낮은 인지적 경직성·비관주의(SPQ-C) ▲낮은 정서적 고립·취약성(SPQ-E)이라는 독특한 패턴이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생물심리학적 프로파일은 화병 환자의 심리 증상 26%, 신체 증상 14%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낮은 SPQ-C와 SPQ-E가 스트레스의 내면화 및 신체화로 이어지고, 높은 SPQ-B가 간헐적 분노·불안·우울 등 대표적 화병 증상을 유발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채한 교수는 “화병만의 정신병리 패턴을 과학적으로 확인해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과 구별할 수 있게 됐다”며 “사상성격검사를 활용하면 향후 화병 환자의 맞춤형 치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종우 경희대 교수는 “화병의 악화 과정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며 “감정 억압 단계에서 시작해 가슴 답답함과 열감 등 신체화 단계를 거쳐, 스트레스 임계점을 넘어 분노가 폭발하는 단계로 진행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수진 경성대 교수는 “SPQ-B를 낮추고, SPQ-C와 SPQ-E를 높이는 심리치료 지침을 제시했다”며 “이는 화병 환자의 정서 안정과 인지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화병이 단순한 문화적 증상이 아닌, 생물·심리·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정신신체질환(psychosomatic disorder)임을 입증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국제 정신의학계에서 한국형 정신질환의 과학적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