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칼럼

[서지은의 보험키워드] 끝과 시작 그리고 ‘견리망의’

Sunday, December 31, 2023, 13:12:09 크게보기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보험설계사는 그달의 계약 체결 개수와 보험료의 크기로 수입이 정해진다.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고객의 변심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청약을 철회하거나 보험상품을 해지하면 수수료가 보험사로 환수되기도 한다. 보통의 회사처럼 입사 몇 년 차가 아닌 설계사로 소속된 차 월수로 보험설계사의 경력을 산정하는 이유다.

 

보험사의 매달 첫날은 차 월수가 더해짐과 동시에 전 달의 내 공과 실을 리셋버튼처럼 순식간에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전 달에 아무리 내가 굉장한 실적을 달성했더라도 매월 1일엔 모든 보험설계사가 같은 선상에 서 있는 셈이다. 전 달에 제대로 마감을 못 한 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보험설계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품을 파는 사람인 만큼 월말마다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가입자를 대면하지 않고 자필서명 없이 급하게 진행하는 불완전 판매에서부터 가입자가 보유하고 있던 기존 계약을 충분한 설명 없이 해지시키고 소위 갈아타게 만드는 승환계약까지. 단순하게 계산해도 일 년이 열두 달이니 최소 열두 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은 전달 실적이 새로운 달이면 리셋된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다. 달리보면 마감이란 끝이 아니라 원점에서 다시 시작으로 환승하는 게이트이기도 해서다.

 

 

보험설계사로 전직한 뒤 매월 말 이런 유혹과 싸우는 게 쉽지 않았지만, 어느덧 감사하게 되었다. 어떤 성과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의기소침도 길게 허용하도록 가만두지 않는 끝과 시작이란 이름의 리셋버튼에 대단한 친밀함까지는 아니어도 차 월수를 거듭하는 동안 일종의 전우애가 쌓여서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이 감사한 이유는 끝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 덕분에 가능하다.

 

끝이란 단어에 아쉬움이 대롱대롱 달려있다면 시작에는 희망이 옅게 칠해져 있다. 아쉬움을 말끔히 보내려 끝은 단호하게 한 글자로 되어있고, 희망을 조금 더 짙게 머무르게 하고자 시작은 끝보다 한 글자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새삼 놀란 건 끝과 시작은 시차를 두고 존재하지 않고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꼭 붙어있어 끝이 주는 심상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물리적으로 이미 '시작'이 시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끝과 시작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나는 가운데에 쉼표 하나를 살며시 찍어주고 싶다.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좌절은 유혹에 빠지게도 하지만 특별한 기회를 향한 도움닫기가 돼주기도 한다. 끝 다음에 이어질 시작 전에서 숨 고르기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우리의 서성임은 유혹에 발목을 잡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앞이 아닌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깨금발을 짓기 위해서여야 한다.

 

그래서일까? 나와 인연이 닿은 이들에게 손 편지가 쓰고 싶어져 연말 며칠 간 출근해 내 책상에 앉자마자 맨 윗줄에 '끝과 시작'이라는 글자를 한 획 한 획 그어 써 내려간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계속 떠올렸다. '견리망의'는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으로 눈앞에 닥친 이익만을 좇는 행동을 꼬집는 말이다. 

 

보험설계사가 차 월수를 거듭해 나가는 과정은 좌절과 극복, 선택과 양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찾는 여정이다. 보험설계사 자리에 인생을, 차 월수 자리에 세월을 두어도 다르지 않다. '견리망의'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란 뉴스를 보고 무릎을 쳤다. 보험설계를 하며 가장 필요한 덕목이 어쩌면 '견리망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한 해를 살면서 정말 부끄러워할 일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돌아보면 그저 살아진 것처럼 보이는 삶도 실은 내가 산 것이다. '그때 그럴 걸 그랬어'라는 후회는 역설적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마음껏 할 수 있기에 괴롭다. 보험은 그 후회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예방하고 싶어 심사숙고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 상품 선택을 하고 비용을 치루는 일이다. 그 선택을 돕는 직업인이 보험설계사다. 

 

2024년 1월은 새해의 시작이자 개인적으로는 보험설계사로 79차 월이 되는 달이다. 갑진년 새해이지만 한 달 단위 마감 인생을 사는 보험설계사에는 한 차수가 새롭게 주어지는 원점이기도 하다. 올해의 사자성어인 '견리망의'를 한 해의 끝과 시작에 앞서 서성이는 마음에 다시금 차곡차곡 담아본다. 끝과 시작이 월마다 반복되는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게 진정 무엇인지 잊지 않고자 말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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