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과 수애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감기>의 흥행 조짐이 심상치 않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기는 하지만, 무서운 질병이라는 인식이 없는 질병인 감기. 이 병이 수많은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다는 게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실제로, 한의사인 내가 감기를 독하게 앓았다. 지난해에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넘어갔는데 말이다. 한의원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감기로 고생할 때 “병원에서 일하는 프로답지 못하다”면서 큰소리를 쳤는데 제대로 스타일을 구겼다.
최근 몇 년 감기는 참 독해진 것 같다. 나 역시 오한에 몸살로 잔뜩 앓았다. 열이 떨어지더라도 기침과 가래는 며칠 더 남았다.
한의학적으로 감기는 몸과의 대화가 부족한 결과로 본다. 기침을 한다든지, 열이 난다든지, 힘이 없다든지, 어디가 아프거나 붓는다든지 하는 증상은 우리 몸에서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감기의 증상이 나타나면 몸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병원을 찾게 된다. 자신도 잘 모르는 몸의 상태를 의사에게는 어찌 그리 쉽게 맡기는지 가끔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몸의 신호, 즉 대화의 요청에 가볍고 일시적인 증상일 거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야단법석을 떨 일도 아니다. 무시하고 지내다가 큰 병으로 키워서 고생하기도 하지만, 너무 예민하게 굴다가 과잉검사, 과잉치료로 몸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기는 몸이 대화를 요청하는 가장 일반적인 질환이다. 이럴 때는 기본적으로 경청을 해 주는 것이 좋다. 감기는 바이러스 때문일까? 하지만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여기 저기 없는 곳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바이러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내 몸이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서는 ‘정기내존 사불가간(正氣乃存 邪不可干, 내 안의 저항력이 있으면 외부의 사기에 침범 당하지 않음)’을 그렇게 강조했던 것이다. 감기에 걸렸다면 ‘몸이 피곤하다고 투정한다’고 생각하면 반 이상은 맞다고 봐도 된다.
몸이 요구하는 바를 잘 들었으면 몸이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한다. 우선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한의학에서는 병을 고친다는 표현보다는 몸을 다스린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감기에 사용하는 한약은 감기균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감기가 난 몸의 증상을 관리해 스스로 치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생활습관을 돌아보라는 이야기도 곁들이고 싶다. 우선 아프니까 쉬는 것은 현재 불편한 증상에 대한 대처이고, 생활습관을 돌아 보는 것은 예방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어째 말하다보니,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아 영 입맛이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피로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감기는 ‘스톱 사인’이라는 점에서 영원한 치료법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박정민 자향미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