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정재혁 기자] “아버지가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자전거에 치여 넘어 지셔서, 갈비뼈 골절에 전치 4주 판정을 받았어. 가해자 보험사 쪽에서 합의금 210만원을 제시했다는데 이거 적당한거야?”
기자가 된 후 친한 친구들에게 보험분야를 담당하게 됐다고 알리자, 많이 받은 질문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받았던 내용은 바로 각종 사고 관련해 ‘합의금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때마침 손해보험사에 지인도 있고 해서 위의 친구 아버지 사례를 설명했습니다. 보험사에서 제시한 보험금이 적당한 지 저도 궁금했거든요. 지인으로부터 "적당한 보험금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고, 이 내용을 친구에게 전했습니다. 제 대답을 듣고 나서야 친구는 안심해 했습니다.
이 외에 “보험금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등의 질문도 꽤 있었습니다. 보험사 직원과 싸워 ‘이긴’ 경험담을 늘어놓는 친구도 있었고, “일단 병원에 입원해라” 혹은 “한의원 가서 치료 받으면 보험사에서 알아서 연락 온다(?)”는 식의 ‘꼼수’를 제시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험사에서 보상 업무를 하는 지인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보험 약관상 정해진 보험금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타내려는 일부 가입자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친한 지인 중 한 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니던 보험사를 결국 관두고 말았습니다.
짧은 기간 이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보험사와 보험소비자 사이에 뭔가 크게 어긋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인 건 분명한데, 과연 누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는지, 누구 잘못이 더 큰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잘잘못을 가려줄 심판이 있으면 좋으련만.
일반적으로는 기업을 강자로, 소비자를 약자로 봅니다. 기업은 거대한 집합체지만, 소비자들은 개개인이 흩어져있어 힘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죠. 보험 산업도 예외일 순 없는데요.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대개 기업을 ‘악’으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기업이 ‘악’이라면 반대로 소비자는 '선'일까요? 적어도 보험사 입장에선 소위 '나이롱 환자' 등으로 불리는 블랙컨슈머는 '선'의 존재가 아닐겁니다. 이들은 다른 소비자에게도 선하지 않죠.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오르게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병원이 아닌 ‘사무장병원’들이 ‘도수 치료’와 같은 실손보험 비급여 항목의 맹점을 악용하다 경찰에 적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보험사를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일부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적게 주기 위해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또 보험을 잘 모르는 가입자를 상대로 한 ‘불완전판매’ 문제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죠.
보험사와 소비자가 서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가 아직 보험 초짜 기자라 모르는 것이면 다행인데, 이 '불신'의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 것을 보면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이 항상 기대는 쪽은 결국 금융당국, 즉 금융감독원입니다. 마치 스포츠 경기의 심판처럼 명쾌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심판이 돼야 할 금감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금감원 출신 인사가 퇴직 후 보험사나 유관 기관에 재취업하는 것이 대표적이죠.
한 보험회사 직원은 금감원을 가리켜 '갑 중의 갑'이라 칭합니다.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하소연 합니다. 오라가라 하는 건 예사라 하고요. 반면, 소비자들은 '금피아'를 언급하면서, 금감원은 결국 기업편이 아니냐며 의심합니다.
화성에서 온 보험사, 금성에서 온 소비자, 그리고 둘 사이에 지구에서 온 금감원이 서 있습니다. 보험사와 소비자는 각자 화가 나서 금감원을 쳐다보고 있고요. '지구인' 금감원은 과연 어디를 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