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권지영 기자ㅣ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90년에 출시한 국민차 티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89년 펴낸 유명 에세이집 제목입니다. 이 책은 펴낸지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해 최단 밀리언셀러 기네스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창업 1세대. 김 전 회장은 만 30세에 대우실업(1967년 3월)을 설립해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셀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만큼 신화적 인물입니다. 수출산업으로 시작해 개발도상국 기업 중 최대의 다국적기업을 일궜습니다.
지난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김 전 회장은 해외진출과 사업다각화 등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대우그룹은 창업 30년 만에 재계 2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김 전 회장이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아주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해온 김 전 회장은 부인과 자녀, 손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는데요. 평소 김 전 회장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임종 직전 김 전 회장은 별도의 유언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 전 회장은 섬유 수출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우그룹은 금융, 건설, 전자, 중공업, 자동차, 조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급속히 확장했는데요. 해외시장 진출의 가장 선두에 서서 세계 경영을 지휘했습니다. 실제로 대우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남미(에콰도르), 아프리카(수단) 등에 진출했고, 중국 시장도 가장 먼저 진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국내에서도 획기적인 사업을 벌였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91년 론칭한 국민차 ‘티코’입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티코를 생산하면서 전 국민에게 자동차 보급을 꿈꿨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1997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2년 뒤인 1999년 그룹 해체수순을 겪었습니다.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를 겪은 당시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는데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김우중 전 회장은 DJ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이후 김 전 회장은 긴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말년은 주로 베트남 하노이와 한국을 반반씩 오가며 지냈습니다. 김 전 회장은 매년 과거 비서실 출신들과 함께 생일 겸 모임에 참석했는데, 작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장병주 회장은 “지난주 토요일(7일)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셔서 특별히 남긴 마지막 말씀은 없었다”며 “평소에 우리가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천주교식으로 진행됩니다. 영정 옆으로는 김 전 회장이 다녔던 성당에서 보낸 근조기가 걸렸고, 위패에는 김 전 회장의 세례명인 ‘바오로’가 함께 쓰였습니다.
영결식은 오는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장지는 김 전 회장의 모친 선영이 있는 충남 태안군에 마련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