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문정태·허장은 기자] 신입 설계사들의 퇴직으로 인한 고아계약이 1년에 줄잡아 십수만 건이 발생하고 있다. 경력 설계사들의 이·퇴직까지 합치면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객들은 고객들대로, 설계사들은 설계사들대로 속을 끓이고 있다.
◇ “평생 자산관리해 드립니다”..허무한 공수표?
보험 설계사들이 보험 가입을 권유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평생 동안 관리를 잘 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특히, 이들 설계사는 고객들에게 “재무 상황에 따른 맞춤형 재무설계를 해준다”며 보험 가입을 권유한다.
하지만, ‘자산 관리를 해준다’는 약속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고객들에게는 공수표에 가깝다는 것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설계사들의 증언이다.
한 외국계 생보사 설계사는 “신입 설계사들은 물론 경력직 설계사들 중에서도 언제 그만둘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며 “보험 판매를 위해서 ‘자산관리’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생보사 설계사는 “자신의 고객에 대한 자산관리 서비스도 제공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며 “다른 사람이 관리하던 고아계약자에 대해서 세세하게 신경을 써준다는 건 공수표를 날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 “민감한 개인정보 알려줬는데…” 소비자들은 찜찜
보험 가입자들 또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험가입을 위해 설계사에게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 알려줬는데, 담당 설계사가 바뀌게 되면 찜찜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종신보험이나 변액보험 등 납입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많은 보험을 가입하기 전에 개인의 각종 금융정보를 알려준다. 한달 급여는 물론 카드값, 예·적금액수, 부동산·주식 보유상황, 보험료, 용돈, 대출이자 등이 포함된다.
또, 건강보험이나 암보험 등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과거 질병 이력과 현재 질병보유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어떤 보험사에서는 보험가입을 위한 심사 과정에서 추가적인 검사를 한 결과물을 제출하라는 요구도 한다.
회사원인 김민수(남, 41세)는 “몇 년 전 대학교 선배를 통해 CI종신보험을 가입했는데, 당시 월급이나 부동산 등 재산 상황과 질병유무 등을 알려줬다”며 “그 분이 보험일을 그만두고 난 뒤 내 개인정보는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찜찜하기 이를 데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 직장인인 진 모씨(여, 35세)는 “‘개인정보는 공공정보’라는 말이 이제는 상식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돼 있다”며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데 보험회사의 고아계약이 일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이런 거 알려주면 안 되는데…” 고객 차별대우 발생?
고아계약은 고객들 간 ‘서비스의 질적 차별’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문제점도 있다.
보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어렵다’이다. 10년 넘게 보험사에서 일을 해 온 직원들에게서도 같은 말이 나올 정도. 하물며, 일반 소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한 생명보험사 설계사는 “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살펴보는 고객은커녕 제대로 보관하지 않고 있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며 “고객들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만, 고객에 따라서는 보험금을 타기에 애매한 경우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변액보험의 경우에는 설계사와 고객 간의 친밀도가 서비스의 질적 차이를 크게 하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또 다른 보험사의 설계사는 “투자형 상품인 변액보험은 환매시점이 매우 중요한 상품이다”며 “퇴직한 설계사로부터 인계받은 고객에게는 메일이나 문자 같은 수단으로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로간의 신뢰구축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주는 것도 쉽지 않다”며 “특히,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고객에게는 더더욱 신경을 써줄 여력이 없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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