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아나운서 연봉’에 이어 이번 주제도 ‘돈’이다. 단, 버는 돈이 아니라 쓰는 돈! 아나운서 준비생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돈 없으면 아나운서 못 된다.”가 아닐까. 이렇게 된 데는 언론사들이 ‘아나운서 시험 준비에 3200만원’, ‘집 한 채 날려도 아나운서 할래’라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한 탓도 크다.
그런데 실제 사례를 통해 비용을 계산했다는 이런 기사들은 대부분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물론 돈이라는 것은 들이고자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들일 수 있다. 14만원짜리 이탈리아산 지우개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기사 속 주인공처럼 ‘의상 639만원, 메이크업비 825만원, 얼굴 및 치아 성형 11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주변의 아나운서 지망생들 중에서는 찾기 힘들다.
일례로 나는 아나운서 준비생 시절 가장 잘 어울리는 단 한 벌의 의상으로 1~4차 시험을 모두 치르곤 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준비생들에게는 합격률이 높은 ‘느낌 좋은 옷’이 한 벌씩 있어 일종의 ‘징크스’처럼 거의 모든 시험에서 그 옷만 입으려고 한다. 만약 다양한 의상이 필요하다면 아나운서 의상대여 숍에서 5만원 이하로 빌려 입을 수 있다.
메이크업과 관련해서도 ‘825만원’을 들이는 사람은 잘 없다. 내가 이용하는 전형적인 아나운서 전문 숍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합쳐 7만원인데, 한 명이 825만원어치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 물론 신부 화장 전문이나 연예인들이 찾는 메이크업 숍은 한 번에 30만원 이상 받기도 한다지만 아나운서 전문이 아니라서 되레 준비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 본인이 배워서 직접 하거나 기본만 스스로 하고 부분적인 메이크업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다.
다만 아나운서가 되는 길에 필수 코스처럼 자리 잡은 아카데미는 정해진 금액이 있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아카데미를 거쳐 아나운서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큰 부담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약 5개월 과정에 300만~400만원은 큰돈이기는 하지만 사실 아나운서가 되고 나면 두 달 치 월급만으로 채우고도 남는 금액이다.
그래서 준비생 시절에 돈 걱정을 하기보다, 차라리 단기간 집중적으로 투자해 열심히 노력하고 빨리 합격하는 것이 돈 버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 역시 아카데미 비용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몇 달 뒤 아나운서가 되어 다 갚아드렸다.
마지막으로 H양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성실히 아나운서 준비를 하며 중소 방송사의 기상캐스터로 일해 온 H양은 며칠 전 발표된 대형 종합편성채널 기상캐스터 공채의 최종 합격자다. 무려 760:1의 경쟁률을 뚫은 H양에게 다른 준비생들의 관심이 쏠렸다. H양이 다니는 메이크업 숍, 의상대여 숍, 프로필 사진관 정보를 알려달라는 학생들의 부탁을 받고 그녀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H양, 메이크업은 스스로, 의상은 평소 입던 옷에 프로필 사진은 PD 지망생 친구가 찍어줬단다. 실망할 학생들을 생각하며 그럼 본인의 합격 요인이 뭐라 생각하냐고 물었다. ‘자신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일 시험장에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방송인들부터, 케이블 채널의 현직 앵커, 지역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도 왔다고 한다.
160cm 초반인 H양 옆에는 170cm가 훌쩍 넘는 미인대회 출신의 지원자가 12cm 킬힐을 신고 서있기도 했단다. 충분히 위축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H양은 ‘자신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사람 결코 신경 쓰지 않고 지금껏 준비해 온 실력만 제대로 보이고 최선을 다하며 즐기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H양의 말이 맞다. 시험장에서 진정으로 지원자를 빛나게 하는 것은 수백만원짜리 옷도, 수십만원하는 화장도 아닌,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신감’이다.
박은주 <나도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