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찬 심리상담사ㅣMBC 드라마 <유부녀 킬러>(연출: 윤종호, 김지훈/극본: 김은희/출연: 공효진, 정준원, 이상이, 성동일 등)는 전설적인 킬러였던 유보나(공효진 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3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보나의 직업이 사람을 죽이는 킬러라는 점은 비현실적이지만, 보나가 워킹맘으로서 일과 가정 그리고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 보나는 복직한 첫날부터 회사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을 신경 쓴다. 보나가 "애 데리러 가야 돼서요"라고 말할 때, 직원들은 보나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보나가 회사에서 유능한 사람이었더라도, 엄마가 되니 아이의 하원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라면 익숙한 모습이다. 아이의 등하원 시간에 맞춰야 하고,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갑자기 연락이 오면 당황스러워한다. 직장일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와도 쉬지 못한다. 부모들이 회사 일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육아와 집안일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두 사람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큰 행복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갈등이 오히려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부부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부부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이 갑자기 많아져서다.
연애할 때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바라보는 관계가 된다. 서로에게 사용하던 시간과 관심을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육아로 인한 수면 부족과 경제적인 부담도 가중된다. 게다가 직장생활과 더불어 집안일도 감당해야 한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실제로 부모됨으로의 전환을 연구한 메타분석에서도 첫아이를 출산한 이후 첫해에 남편과 아내 모두 결혼만족도가 평균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한 배우자의 결혼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때, 다른 배우자의 만족도도 함께 낮아지는 부부간의 상호영향이 나타났다.
물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반드시 나빠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과정은 부부관계에도 큰 변화와 적응이 필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된 뒤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 역할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 보나와 태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부부가 되어가는 성장 과정이 흥미롭다. 결혼 전 보나는 지금의 아내와 엄마인 보나와 달랐다. 오랫동안 킬러로 살아온 보나는 자신의 삶에 지쳐 있었다. 그런 보나가 설원의 산장에서 권태성(정준원 분)을 만난다. 그리고 태성은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보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태성은 보나에게 "앞으로 내가 많이 보여줄게요"라며 보나가 알지 못했던 삶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는 것에 익숙했던 보나는 태성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혼자였던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애착이론은 어린아이와 주양육자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시작되었지만 이후 성인의 연애와 부부관계를 이해하는 이론으로 확장되었다. 성인에게는 배우자가 중요한 애착 대상이 될 수 있다. 힘들고 두려울 때 배우자에게 가까이 가서 위로와 도움을 받고, 배우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성인 애착 연구에서도 연인이나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가 되고,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보나에게 태성은 안전기지 역할을 했다. 그런데 부모가 된 뒤에는 서로가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연애할 때는 한 사람이 힘들면 다른 사람이 위로하고 기다려줄 여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육아를 시작하면 둘 다 힘든 경우가 많다. 엄마도 지쳤고 아빠도 지쳤다. 어느 한 사람만 계속 상대의 안전기지가 되어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부모가 된 부부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나와 태성의 관계도 태성이 힘든 보나를 지지해 주던 관계에서, 부모가 된 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관계로 나아간다.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부부갈등의 내용은 매우 현실적이다. 집안일, 육아, 돈, 양가 부모, 직장생활 등이다. 그런데 부부가 싸우는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정서적인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힘들 때 배우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이다. 자신이 배우자에게 중요한 사람인지에 대한 불안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힘들 때 내가 당신에게 의지해도 되는가’라는 애착의 문제와 맞닿는다.
애착이론을 바탕으로 한 수 존슨(Sue Johnson)의 정서중심부부치료(Emotionally Focused Couple Therapy, EFT)도 부부의 갈등행동만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EFT에서는 부부가 갈등할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행동 아래에 숨어 있는 애착 욕구와 두려움을 찾아 서로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돕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는 이러한 정서적인 반응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육아와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누가 더 많이 했는지를 계산하는 것만으로 부부의 친밀감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힘들어하는 배우자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배우자가 힘들 때 자신을 혼자 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부모가 된 부부에게는 힘들 때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으면서도, 서로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육아라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경험이 반복될 때 부부의 애착관계도 더욱 안정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친밀한 애착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는 부부관계를 돌볼 시간마저 부족하다. 아빠와 엄마 역할을 열심히 하느라 정작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잊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부모가 서로 안정된 관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부모의 부부관계는 아이가 매일 보고 경험하는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결혼식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되어가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부모 역할에 적응하면서 다시 부부가 되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을 지나면서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알아가고,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서로라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부부의 애착도 성장할 수 있다.
결혼 전 태성은 삶에 지쳐 있던 보나에게 "앞으로 내가 많이 보여줄게요"라고 말했다. 그때는 태성이 보나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부모가 된 뒤에는 한 사람만 다른 사람에게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서로가 자신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 역할에 지친 모습, 부족한 모습, 도움이 필요한 모습도 배우자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낸 모습을 서로 받아주는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가 된 뒤에도 서로에게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고, 다시 자기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안전기지가 되는 것. 어찌 보면 그것이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부모가 된 후 다시 부부가 되어가는 성장 과정일 것이다.
■ 최옥찬 심리상담사는
"그 사람 참 못 됐다"라는 평가와 비난보다는 "그 사람 참 안 됐다"라는 이해와 공감을 직업으로 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내 마음이 취약해서 스트레스를 너무 잘 받다보니 힐링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주 드라마와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찾아서 소비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