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그녀를 사랑하면 죽는다." 상당히 도발적인 이 문구는 얼마 전 종영한 미스터리 멜로 드라마 <세이렌>을 요약한 한 줄 카피로, 주인공 '한설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는 대형 옥션의 수석 경매사라는 독특한 직업과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한설아와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설아를 수익자로 한 거액의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가 그들 모두 죽기 얼마 전 보험을 해지했다는 사실이다.
정황상 보험 살인의 강력한 용의자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그녀를 조사하기 위해 SIU(보험사기 특별조사팀) 직원 '차우석'이 파견되고, 처음엔 그녀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그 역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비극적인 삶에 연민을 품다 나아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한설아의 과거 연인들처럼 위험에 몰린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전설 속 '세이렌' 같은 파멸의 아이콘일까?
보험금의 종류는 다양하다. 아프거나 다쳤을 때 받는 보험금, 노후 자금으로 쓰이는 연금, 그리고 죽음으로 받는 사망보험금 등이 그것이다. 아플 때는 치료가 필요할 뿐 아니라 일정 기간 소득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 보험이 필요하다. 연금은 말 그대로 내 노후를 책임지는 방편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죽음에 왜 보험금이 필요할까? 오래전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한창 외자계 보험사가 들어왔을 때 가장 많이 판매된 보험이 바로 종신보험이다. 단란한 가족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뒤로 돌리면 가장의 영정사진으로 바뀌며 눈물샘을 자극하던 생명보험 광고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가장이라는 무게는 그토록 무거웠고 가장이 사라진 자리에 파인 경제적 구멍은 슬픔에 빠진 가족의 미래를 향한 희망마저 함몰시켰다. 이렇듯 가장이 가입한 종신보험이 혹시 발생할지 모를 유고 상황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수단이 된다는 데 이견은 없을 테다. 그럼, 종신보험에 들어있는 사망보험금의 수익자를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 할 수 있을까? 드라마 <세이렌>의 한설아처럼 말이다.
정답을 먼저 공개하자면 보험법상 타인도 사망보험금의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다. 가족, 친척, 친구, 지인뿐 아니라 법인(회사)을 수익자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절차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타인을 사망보험금의 수익자로 지정하기 위해 반드시 보험의 대상인 피보험자의 서면동의가 필요하다(보험업법 및 상법 제731조). 또한 수익자 변경 시에도 피보험자 동의를 원칙으로 한다.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사는 수익자와 피보험자의 관계를 심사할 수 있고 불법적 목적이 의심되면 계약을 거절하거나 무효로 처리할 수 있다. 타인을 수익자로 지정한 보험의 피보험자 사망 시 수익자가 보험금을 받는 데도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계약 내용을 확인하는 쪽은 보험사라 수익자로 지정된 자가 타인이라 해도 수익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별도로 준비할 서류는 없고, 수익자 본인의 신분증만 있으면 된다. 설령 가족(상속인)이 반대해도 수익자가 지정된 보험금은 수익자 고유의 재산이므로 보험사는 상속인이 아닌 수익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즉, 보험금은 수익자로 지정된 이에게 먼저 지급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핵심적인 문제는 타인은 원칙적으로 사망 확인 서류를 직접 발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망 진단서 및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은 개인정보보호법과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발급 대상이 엄격히 제안되어 있어 타인 수익자가 사망보험금을 받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물론 수익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가 행정정보 공동이용망을 통해 사망 사실을 직접 확인하면 굳이 타인이 사망 관련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되고, 사실상 유족(상속인)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유족이 수익자에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주면 대리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족이 협조를 거부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법원을 통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는 시간과 비용 소모가 크다. 드라마에서와 같이 타인을 사망보험금의 수익자로 지정하는 상황을 10년 차 보험설계사임에도 접해본 경험은 없다. 그러나 재혼 가정의 상속에서 이는 중요한 화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배우자와 자녀를 1순위 상속인으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자녀'는 전 배우자와 현 배우자의 소생 모두 동등하게 취급하므로 재혼 가정을 꾸릴 때 재혼 상대의 자녀도 가족이 되면 혈연이라는 관점에서야 타인일지 몰라도 법적으로 엄연한 가족 상속인이 된다.
여담인데, 재혼한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둔 한 고객이 전 배우자와 함께 사는 자기 아들을 위해 종신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의뢰인이 수익자로 지정하고 싶어 한 아들은 아직 미성년자였고, 만일 성년이 되기 전 친부가 사망하면 발생한 사망보험금은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친권자가 관리하게 된다.
이때 고인의 의도와 다르게 보험금이 쓰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보험금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방법도 있음을 소개했는데 이는 보험 계약 시점에 연계 설계하는 게 좋다. 신탁회사를 통해 수익자의 나이 및 상황에 맞춰 지급 조건을 걸어둔다면 지정한 수익자에게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험금이 지급된다.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은 나의 죽음 이후 슬픔과 빈곤이라는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돼주는 장치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려 든다면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를 베는 칼이 될 수도 있다. 방패로 삼아야 할 수단을 칼로 쓰는 모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보험계약 전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 사이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것도 보험설계사로써 중요한 업무 포인트 중에 하나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