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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의 음식추억] 어깨너머 깃든 그리움으로 배추를 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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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December 11, 2022, 01:12:51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올해 겨울은 유난히 더디게 왔다. 11월 말이 되었어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없어 김장에 대한 긴장도 뒤로 밀렸다.

 

11월 22일, 절기상 소설(小雪)은 ‘김치의 날’이다. 2007년 김치산업 진흥을 위해 저 날을 김치의 날로 정했는데, 공교롭게 김치의 날 태어난 나는 김장독을 묻어놓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김장 즈음이면 친척들마저도 내가 김장철에 태어났다고 알은체를 할 정도이니 나는 김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올해는 김장을 건너뛸 참이었다. 식구들 흩어져 모이는 날은 드물고 아이들은 한 끼에 기껏해야 김치 한두 조각 집어 들까 말까다. 그런데도 여든다섯의 외숙모가 올해 면사무소에서 보급받은 신품종 배추 맛이 끝내준다며 무,배추 실어가라 재촉을 하여 외갓집에 들러야만 했다.

 

“외숙모, 딱 열 포기만요!”

 

배추 열포기라 해도 결코 적지 않다. 분명 조카들 준다고 개중 실한 배추만 따로 골라 놓았을 테고 한 포기를 네 쪽으로 가르면 무려 마흔 쪽이다. 하루에 한 쪽씩만 먹어도 한 달 열흘은 먹는다. 하지만 이미 외갓집 마당에 좋이 스무 포기는 넘을 듯한 배추가 절여져 있다.

 

김장에서 가장 큰 품이 드는 일은 소금에 절이기다. 배추 다듬어 절이고 중간중간 한 번씩 뒤집어 준 뒤, 잘 헹궈 물을 빼는 과정에서 허리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소금물 머금은 배추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 즈음 절임배추 배달하는 택배기사들 허리를 잡아먹는다. 외숙모는 아파트에서 배추 절이기가 어디 쉽냐며 절이는 길에 절였다지만 올해 김장은 외숙모가 다 해준 셈이다.

 

생배추가 아닌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그는 풍속이 재빨리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유통업체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생배추와 절임배추 구매 의사가 50대 50정도 된다고 하니 앞으로도 절임배추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괴산이나 해남 같은 배추 주산지마다 절임배추 사업을 겸한다.

 

서울살이가 시작되면서 엄마가 가장 난감해하던 일이 김장과 장을 담그는 일이다. 동작을 크게 마당에 부리는 살림이기 때문이다. 팍팍한 서울 살림살이에 그만큼의 마당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다라이’라 부르는 고무 함지박 들어갈 자리 하나 부리지 못하여 욕실의 욕조가 그나마 마당을 대신했다.

 

어차피 가스값, 물값 무서워 욕조에 물 받아서 씻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불 빨래나 김장 배추를 절이는 용도로나 쓰였던 욕조에 한가득 배추를 절여 두고, 엄마가 중간중간 배추를 뒤집으라 중간중간 일을 시켰다. 어느 날은 김장한다고 일찍 들어오라는 말 거역하고 늦게까지 술추렴을 하다 새벽녘 몰래 들어왔다. 그래도 욕조에 절여지고 있는 배추를 잘 뒤집어 놓아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한 적이 있다. 새벽에 배추를 뒤집어야 했는데 깜박 잠이 들었노라 하면서 넘어가 준다던 엄마와의 마지막 김장은 그랬다. 엄마는 그 김장 다 헐기도 전에 몸 져 눕더니 그 길로 내 곁을 떠나버렸다.

 

지금 우리 집 아이들에게 절인 배추를 뒤집어 놓으라 하면 배추를 호떡 뒤집듯이 뒤집어 놓으라는 뜻으로 알아듣겠지. 배추가 골고루 절여지도록 맨 밑의 배추와 맨 위에 얹힌 배추의 위치를 바꾸란 뜻으로 알아들을 리가 없다.

 

몇 년 전 배추 절이기에 실패해 김장을 대차게 망친 적이 있다. 다 절여졌다고 생각해서 헹궜는데 배추가 빠닥빠닥 다시 다 살아나 버렸다. 가사 시간에 배운 소금 염도 맞추기 이론은 배추라는 실체를 마주해 당황스러웠다. 소금과 물, 시간만 필요한 이 단순한 과정은 유튜브를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한두 포기 담가 먹을 때는 몰랐지만 꽤 많은 배추를 절여야 할 때는 요령이 있어야 해서다.

 

이는 저울과 염도계로도 해결이 안 나는 감각의 영역이자 어깨너머로 배우는 생활과 삶의 영역이다. ‘감으로’ 대처해야 하는 ‘어깨너머’의 자리는 늙은 외숙모와 함께 사라져갈지, 의구하게 이어져갈지 확신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내 어깨너머를 보여주고 있진 않아서다. 가르쳐놓는다 한들 저 세대의 아이들이 김장을 담가 먹고 살 것 같진 않다.

 

2013년 유네스코에 한국의 김치가 아닌 ‘김장문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족과 이웃이 모여 함께 담가 서로서로 나눠 먹는 그 문화를 유산으로 잘 남기란 뜻이다. 하지만 이는 절멸의 위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숙모 세대가 떠나고 그나마 어깨너머의 삶을 목격한 내 또래 세대가 사라진다면 김장은 과연 끝까지 힘을 낼 수 있을까.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쯤 김장 체험 행사에서 절여 놓은 배추에 다 해놓은 양념만 바른 뒤, 인증숏 몇 장 남기는 일은 영 탐탁지 않다. 아이들 유치원에서 김장 체험한다며 절인배추와 김장속을 해서 보내면 일회용 장갑 끼고 재밌게 속만 넣는 행사를 반대한 적도 있었다. 과정은 빠지고 오로지 ‘절정’과 ‘재미’만 남기는 문화를 유산까지 삼을 필요는 없을 듯 해서다. 사라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그 자리를 쓸쓸하게 지켜보고 기록으로나마 남기는 것도 인류의 용기다.

 

엄마 옆에서 마늘이나 쪽파라도 까면서 김장에 참여한 때가 열 살 쯤. 그렇다면 나는 서른여섯 번의 김장을 담근 셈이다. 내 살림을 살면서 온갖 김장에 도전해 보기도 했다. 갯것들 부족한 충북 내륙의 김치에는 새우젓이나 액젓만 조금 넣는다. 가욋돈으로 사야 하는 해산물은 거의 넣지 않았다. 무생채가 배추만큼이나 많이 들어가 물이 많이 잡히는 김치다.

 

김장을 담그는 또 다른 이유는 설 명절에 만두소로 삼아야 해서 어차피 털어버리는 양념도 아까워 최소한으로 양념을 넣어 담가놓고 나면 흐릿한 모양새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굴 양식이 이루어진 다음에 내륙 산간에도 굴을 조금씩 넣기 시작했지만 굴은 늘 귀했다. 어쩌다 김치에서 삭은 굴이라도 나오면 서로 먹겠다며 남매들끼리 와호장룡풍의 싸움을 하곤 했었다.

 

그 결핍의 경험에, 바깥 음식 먹는 사회생활이 덧대지면서 진한 김치 맛에 매료되기도 했다. 어느 집의 비법이라 하여 생새우를 갈아 넣기도 하고, 생선을 넣기도 했다. 생오징어와 굴을 잔뜩 넣기도 하고, 육고기를 다져 넣는 집이 있다 하면 따라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제는 굴 한 보시기조차 넣지 않는 그 시절의 김장으로 귀환했다. 이 나라에 맛있는 김장김치는 넘쳐나겠지만 내 몸에 인류문화유산으로 남은 김장김치는 심심하고 물에 씻긴 희멀건한 ‘우리집’ 김장이다.

 

화학사 털실로 짠 스웨터 어깨에 쌓인 흰 눈을 털어가며, 김치광에서 김치를 꺼내오는 엄마도 떠났고, 외숙모도 이제 김치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그래도 그 어깨너머의 사랑과 슬픔을 가르쳐 준 당신들이 그리워 해마다 김장을 담가 먹고 살지도 모른다.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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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쪼개기상장’ 시장에 설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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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16:14:17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계획' 수립 원칙과 세부 작성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밸류업 당사자로 새로운 형태의 공시라는 숙제를 받아든 상장기업에 길라잡이를 제시해 이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배구조'를 한국증시 주요 저평가 요인중 하나로 지목하고 개선방안 공시를 권고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수용성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위원회는 2일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흐름도를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으로 구성했습니다. 먼저 '기업개요'에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이 그 자체로 기업에 대한 완결성 있는 보고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업종, 주요 제품·서비스, 연혁, 재무상태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합니다. '현황진단'은 기업의 사업현황에 대해 시장환경·경쟁우위요소·리스크 등을 입체적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재무·비재무 지표 중 중장기적인 가치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지표를 선정·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주요 재무지표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이익비율) 등 시장평가 ▲ROE(자기자본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COE(주주자본비용), WACC(가중평균자본비용) 등 자본효율성 ▲배당(금액·성향·수익률), 자사주(보유분·신규취득·소각내역), TSR(총주주수익률) 등 주주환원 ▲매출액·영업이익·자산 증가율 등 성장성 ▲자산 포트폴리오(영업·비영업자산), FCF(잉여현금흐름), 부채비율 등 기타로 분류해 다각적인 지표를 예로 제시했습니다. 비재무지표는 지배구조 관련 일반주주 권익제고, 이사회 책임성, 감사 독립성을 위한 여러 요소를 기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항목 및 기관투자자 등 시장참여자가 주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가령 상장기업이 성장성 높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분할자회사를 상장하는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다면 기업은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증진하는 계획을 설명하거나 물적분할 후 분할자회사를 비상장 완전자회사로 유지하는 계획을 밝히는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핵심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상장하면서 모회사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상장기업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가 있는 경우 상장기업과 비상장 개인회사간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향후 계획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한 감사 독립성 강화도 좋은 예시로 기업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표설정'에서는 일시적·임시방편적 개선이 아닌 중장기 목표를 제시합니다. 중장기적 사업전략없이 단기적인 주가부양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계량화된 수치로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정성적인 서술 또는 구간제시 등 다양한 방법의 목표설정도 가능합니다. '계획수립'에서 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며 사업부문별 투자, R&D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환원, 비효율적인 자산처분 등 다양한 사업전략적·재무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은 연 1회 공시 사이에 어떤 노력을 이행했는지 잘된 점과 보완 필요사항을 기재(이행평가)하고 주주·시장참여자 의견이 경영에 반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해 쌍방향 '소통'을 확대합니다. 상장사 이사회는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적절히 수립·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필요하다면 이사회 보고,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금융위는 강조합니다. 공시는 연 1회 등 주기적 공시와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영문공시 병행이 권장되며 예고공시도 가능합니다. 이번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해설서 제정안은 최종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중으로 확정·발표될 예정입니다. 이후 준비가 되는 기업부터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을 통해 공시를 시작합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기업 밸류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며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유관기관은 밸류업 세제 지원방안 마련·발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우수기업 표창 등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하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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