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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정진영의 안주잡설] ‘꼬치구이’ 세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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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14, 2022, 11:08:52

 

 

정진영 작가ㅣ몇 년 동안 여러 고시원을 전전하며 보냈던 20대 시절, 여름은 혹독했다. 2평도 안 되는 좁은 방은 인내를 시험하는 장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내부 공기의 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공용 에어컨 운전 시간은 몹시 짧았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선풍기에선 더운 바람이 쏟아졌다.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더위를 먹고 죽을 것 같아서 방에 비치된 작은 냉장고 안에 머리를 들이민 적도 있었다. 더위에 몹시 취약한 내가 어떻게 그 시절을 견디며 건너왔나 싶다.

 

열대야 탓에 짐 못 드는 날에는 취기에 기대어 잠을 청하려고 차가운 소주를 들이켜곤 했다. 더위에 지쳤을 땐 든든한 음식을 안주로 먹어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데, 그런 음식은 대개 삼계탕처럼 뜨끈하고 차리기에도 번거롭다. 뜨거운 방에 앉아 뜨거운 안주를 번거롭게 차려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내가 자주 선택한 안주는 가까운 포장마차에서 파는 닭꼬치였다. 뜨겁지 않고, 고기를 씹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치킨이 더 낫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내게 닭꼬치와 치킨은 달라도 너무 다른 안주다. 같은 닭고기여도 꼬치에 꽂혀 있는 닭고기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닭고기가 아니어도 좋다. 비엔나소시지, 마늘, 은행 등 흔한 안주도 꼬치에 꽂혀 있으면 왠지 더 특별하게 보인다. 나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 아무튼 나는 꼬치구이라면 여전히 환장하고 먹는다.

 

내겐 꼬치구이에 관한 강렬한 기억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기억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가 많이 내려 방에 물이 찼다는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미뤄 볼 때, 아마도 계절은 여름이었을 테다.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나는 서울의 한 술집에서 생전 처음 꼬치구이를 먹었다. 나는 그 술집의 상호가 ‘투다리’였음을 확실하게 기억한다. 술이 뭔지도 모르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지금까지 생생한 걸 보니 그만큼 꼬치구이가 맛있었나 보다.

 

대전 토박이인 나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잠시 서울 천호동에 거주했었다. 당시 아버지는 먹고살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가족을 모두 데리고 낯선 서울로 이주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서 일거리를 찾기 쉽지 않으니 삶이 팍팍했다. 마땅한 반찬이 없어 간장에 밥을 비벼 끼니를 때우는 일이 허다했다. 또래 동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있는 동안, 나는 홀로 동네 빈 골목에서 흙을 만지며 놀았다. 혼자 놀기 심심하면 부업을 하는 어머니 옆에서 함께 조화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투다리’에서 꼬치구이를 먹은 날은 아마도 아버지께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아온 날이었을 테다. 그날 아버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내게 꼬치구이 하나를 건네주셨다. 달달하면서도 짭짤하고 쫄깃한 맛. 고기는 고기인데 그동안 먹어본 고기는 아니었다. 아주 맛있었다.

 

두 번째 기억은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던 1993년 여름 안에 있다. 한빛탑과 테크노피아관 입구에 늘어선 끝없는 관람객의 행렬, 선녀처럼 아름다운 도우미 누나들을 봐도 무덤덤했던 나는 온갖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 앞에서 흥분했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흥분시킨 먹거리는 꼬치구이였다. 그곳에서 나는 미취학아동 시절에 먹었던 꼬치구이를 오랜만에 발견해 침을 흘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꼬치구이가 무척 맛있었다는 기억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꼬치구이의 재료가 닭염통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여담인데 ‘투다리’에서 먹었던 닭염통꼬치와 달리, 엑스포 행사장 주변 노점에서 파는 닭염통꼬치 끝엔 구운 마늘도 함께 꽂혀 있었다. 구운 마늘의 맛은 아리지 않으면서도 구수했다. 그때 나는 마늘이 처음으로 맛있는 음식임을 깨달았다.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내게 꼬치구이의 표준은 ‘투다리’에서 먹는 닭염통꼬치다. 지금도 나는 꼬치구이집에 들르면 닭염통꼬치부터 주문한다. 닭염통이 다른 부위보다 훨씬 저렴한 부위라는 걸 알지만, 내 입맛에는 여전히 훌륭하다. 어린 시절에 한 번 새겨진 입맛을 지우기가 참 어렵다.

 

세 번째 기억 속 꼬치구이는 내 인생을 바꿨다. 2014년 여름, 나는 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와 홍대 앞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술자리를 가졌다. 자리를 여러 차례 옮겨가며 술을 마셨는데, 여성과 단 둘이 이렇게 술을 오래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내게 정말 맛있는 집이 있다며 나를 땡땡이골목에 있는 한 꼬치구이집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소막창꼬치구이를 주문했다.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 여기에 식욕을 돋우는 불향.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꼬치구이 중 최고의 맛이었다. 소막창을 숯불구이나 볶음으로 먹어본 경험밖에 없었던 나는 그날 새로운 맛의 세계를 봤다. 소막창을 꼬치에 꽂아 굽지 않았다면 과연 그런 기가 막힌 맛을 느낄 수 있었을까. 꼬치구이는 맛있는 안주를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희한한 마법을 부린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에 틀린 게 없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나는 퇴근 후 종종 그녀와 함께 그곳에서 소막창꼬치구이를 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뒤 그녀가 나와 결혼해 내 반려자가 될 줄은 그땐 상상도 하지 못 했다. 아내와 함께 지금까지 수많은 술잔을 기울였지만,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꼬치구이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여전히 각별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나는 부지런히 나이 들고 있지만, 꼬치구이를 먹을 때만큼은 아버지와 함께 처음 ‘투다리’에 갔던 일곱 살 여름이나 엑스포 행사장을 신나게 돌아다녔던 열세 살 여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처음 아내와 만났던 서른네 살의 여름도 꼬치구이와 함께라면 더 촉촉하고 아련하게 머릿속에 재생된다.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 세 번의 여름과 꼬치구이를 잊지 못할 것이다. 좋은 안주는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을 되돌리는 타임머신이 아닌가 싶다.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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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금융위, ‘상호금융팀’ 출범…새마을금고 감독 강화

금융위, ‘상호금융팀’ 출범…새마을금고 감독 강화

2024.04.29 10:00:16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위원회는 신협·농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상호금융팀'을 설치·운영한다고 29일 밝혔습니다. 범부처 협업조직으로 금융위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농림축산식품부가 협력하는 구조입니다. 상호금융팀은 상호금융권에 대한 국민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합니다. 부동산·건설업 대출 등 부실우려여신을 중심으로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부실채권 매각, 채무조정 등 리스크 관리도 지속적으로 추진합니다. 유사시 대응능력도 상시점검해 상호금융 시스템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관리합니다. 현재 행안부에서 관리·감독 중인 새마을금고에 대해선 올해 2월 부처간 체결한 협약에 따라 금융위(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행안부(새마을금고중앙회)의 감독 협업체계를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상호금융팀은 상호금융권 규제 차이 해소를 위한 제도개선도 주요과제로 추진합니다. 그간 상호금융은 다소 느슨한 건전성규제와 지배구조 제도가 적용되면서 업권 내에서도 규제 차이로 인한 형평성과 불공정경쟁 이슈가 제기돼 왔습니다. 지속적인 자산규모 확대와 고위험대출 증가 등 외형과 실질에 맞는 정교한 제도정비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합니다. 신협-금융위, 농협-농림축산식품부, 수협-해양수산부, 산림조합-산림청, 새마을금고-행안부 등 관계기관이 공조해 체계적인 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금융위 주관, 고용노동부·행안부가 협력하는 복합지원팀이 신설됩니다. 복합지원팀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가 금융은 물론 고용·복지까지 통합지원하는 종합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취약계층 금융지원은 금융위(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고용지원은 고용노동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개별적으로 집행해 충분한 연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협업조직이 출범하는 만큼 취약계층에 대한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이 제공되고 상호금융기관에 대한 국민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현장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업하겠다"고 부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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