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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칼럼

[정은정의 음식추억]이삿날, 짜장면이 고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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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pril 03, 2022, 11:04:12

 

 

정은정 농촌사회학자ㅣ10여 년 전쯤, 내가 태어난 집에 찾아가 보았다. 어릴 때 떠나와 고향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은데도, 태어난 자리에 찾아가 생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 그 본성을 우연히 따른 날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당시의 기억을 가질 수 없고, 가족과 친지, 이웃들의 말에 의지를 해야 한다. 나는 우연히 인터넷 항공지도로 내가 태어난 집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집에서도 온갖 등초본을 열람할 수 있어서 생의 흔적을 찾기는 더 수월하다. 인생 최초의 기록이 남아있는 주민등록등초본을 떼어 보니 프린터에서 쉬지 않고 서류가 쏟아져 나왔다. 40대 중반 나이에 도합 스무 번이 넘는 이동 기록이 남아있다. 그렇게 태어난 집을 찾아 사진도 한 장 찍어 간직해 두었고, 내가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헐렸다.

 

주민등록등본에 남아있는 이사의 이력은 한 가족의 생애사를 압축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충청도에서 서울로 떠나와 평균 2년에 한 번씩 이동을 한 셈이다. 짧게 살았을 때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한 적도 있다. 지금은 전세 계약이 2년이지만 80년대만 해도 1년이 계약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이 많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은 곳도 있었다. 엄마는 주인집이 신경 쓰여 발뒤꿈치를 들고 까치발로 다니라 다그치기도 했다. 고향에서 동네 이사를 할 때는 대체로 들뜨고 설레기도 했었다. 트럭 뒤에 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고, 좀체 뭘 사 오는 일이 없는 엄마가 박카스 같은 드링크류를 사서 이사를 도와주는 이웃들에게 돌리기도 해서 그 우수리가 떨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끝내자마자 엄마는 팥시루떡을 쪄서 골목길 가까운 집에 돌리곤 했다. 그 심부름은 나와 작은언니의 몫이었다. "엄마가 이사 떡 갖다 드리래요." 라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빈 접시에 사탕이나 과일 등속을 얹어 다시 받아오는 재미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이사의 재미는 서울로 오면서 끝이 났다. 일곱 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를 올 때는 트럭이 아니라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엄마 무릎에 앉아 맨 뒷자리에 앉아서 왔는데, 호된 멀미를 해서 얼굴이 누렇게 뜬 채로 서울 마장동 터미널에 내렸다. 그렇게 멀미와 함께 팥시루떡 돌릴 일도, 박카스를 나눠 먹을 일도 없이 서울로 떠밀렸다.

 

서울에서 오래도록 셋방을 전전하다 보니 주인집 사정에 묶여 우리집 사정은 더욱 출렁댔다. 딱 한 번 좋았던 주인집은 아들 내외에게 우리가 살던 집을 내주는 바람에 갑작스레 나온 적도 있었다.

 

등본 주소만 보아도 어떤 이사를 했었던 것인지 고스란히 떠오른다. 아무리 어렸어도 부모님의 한숨이란 어린애의 심장에 박히는 일이니까. 잘 풀려서 가는 이사는 거의 없었다. 농촌 출신의 부모님이 더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는 난망하고, 자식들은 머리가 굵어져 교육비도, 식비도 더 들어갔다. 몸집이 자란 자식들은 자기 방을 내달라 아우성쳐도 수도권의 부동산값은 언제나 사람보다 발이 빨라 저 멀리 내빼기 일쑤였다.

 

살림을 줄여가거나 지하로 내려가거나 하는 이사가 많아서 분위기는 늘 가라앉아 있었다. 이사 때마다 인근에 사는 삼촌과 사촌 오빠들이 와서 힘을 보탰다. 지금처럼 포장이사도 없던 시절이고 설사 있었다 한들 비싼 포장이사를 했을 리 만무하다.

 

신문지를 모아 그릇을 싸고, 단골 상회에서 종이박스를 얻거나 돈을 주고 사기도 했다. 정육점 고기를 묶을 때 쓰는 분홍 나일론 끈으로 책을 묶었다. 용달차 기사는 짐이 너무 많다며 트럭 한 대는 더 불러야 한다며 짜증을 냈지만,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짐을 높이 쌓아 묶으면 되지 않냐며 짐을 욱여넣으니, 어린 나는 주눅이 들었다.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 했고, 아직 살림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라면 하나 끓여 먹을 수도 없었다. 가스 연결도 하루는 지나야 했고, 전화 개통도 2~3일은 기다려야 했던 때였으니까.

 

지금은 팥빙수 한 그릇, 커피 한 잔도 배달을 시켜 먹지만, 오래전부터 배달음식은 오로지 중국음식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풀지도 못한 짐짝 위에서 먹기엔 짜장면이 제격이다.

 

대강 집 한 귀퉁이를 치우고 신문지 위에 짜장면을 올려놓고 먹으면 그렇게 한 끼가 해결되었으므로 이삿날에는 짜장면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 아닐까. 짬뽕까지는 허락되지만 탕수육 같은 것들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나마 여러 그릇 시킨다고 군만두 서비스라도 주면 감지덕지였다. 군만두를 서비스로 주기 시작하면서 중국집의 군만두의 질이 떨어졌다 한탄하는 이들도 많지만, 살림 줄여나가는 서글픈 이사에 그런 서비스 군만두라도 없었으면 더욱 서글펐을 것이다. 모든 튀김 요리는 이름 붙은 날, 좋은 날에 먹는 음식이니까.

 

평소에는 허덕허덕하던 짜장면이지만 어린아이 눈에도 형편 꼬여 가는 이사인 것이 빤해, 이삿날 짜장면이 맛있지 않았다. 이삿날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없어서인지 지금도 이삿날 짜장면 먹는 일이 어쩐지 서럽다.

 

지난주 이사를 했다. 수도권의 전세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해 조금 더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집 앞은 소음과 먼지가 날리는 공사판이지만 그 덕분에 주변 시세보다 조금 더 싼 전셋집을 낚아채서 묵은 살림을 옮겼다. 세입자로 살면서 받는 최고의 스트레스 중 하나가 이사 스트레스지만 또 어떻게든 삶의 자리는 옮겨지게 마련이다.

 

대충 짐을 부려놓고 의례를 치르듯 중국요리를 시켰다. 그 시절 엄마는 탕수육 소(小)자 한 개 안 시켜주고, 심지어 짜장면 곱빼기 하나로 나와 작은언니는 나눠 먹으라 해서 우리를 더욱 서럽게 했지만, 이번에는 유산슬에 빼갈도 하나 시켰다. 일인 일 짜장! 일인 일 짬뽕! 삼선 짜장도 오케이! 먼 옛날 짜장면 곱빼기를 언니와 서럽게 나눠 먹던 어린 나를 토닥거리면서, 탕수육을 뛰어넘는 그런 삶을 꿈꾸면서, 호기롭게 외쳤다.

 

"여기, 짜장 둘, 짬뽕 하나, 유산슬 하나, 빼갈도 추가요!"

 

■정은정 필자

 

농촌사회학 연구자. <대한민국치킨展>,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등을 썼다. 농촌과 먹거리, 자영업 문제를 주제로 일간지와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나가 농촌과 음식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그림책 <그렇게 치킨이 된다>와 공저로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팬데믹시대, 한국의 길>이 있고 <한국농업기술사전>에 ‘양돈’과 ‘양계’편의 편자로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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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쪼개기상장’ 시장에 설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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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16:14:17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계획' 수립 원칙과 세부 작성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밸류업 당사자로 새로운 형태의 공시라는 숙제를 받아든 상장기업에 길라잡이를 제시해 이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배구조'를 한국증시 주요 저평가 요인중 하나로 지목하고 개선방안 공시를 권고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수용성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위원회는 2일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흐름도를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으로 구성했습니다. 먼저 '기업개요'에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이 그 자체로 기업에 대한 완결성 있는 보고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업종, 주요 제품·서비스, 연혁, 재무상태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합니다. '현황진단'은 기업의 사업현황에 대해 시장환경·경쟁우위요소·리스크 등을 입체적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재무·비재무 지표 중 중장기적인 가치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지표를 선정·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주요 재무지표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이익비율) 등 시장평가 ▲ROE(자기자본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COE(주주자본비용), WACC(가중평균자본비용) 등 자본효율성 ▲배당(금액·성향·수익률), 자사주(보유분·신규취득·소각내역), TSR(총주주수익률) 등 주주환원 ▲매출액·영업이익·자산 증가율 등 성장성 ▲자산 포트폴리오(영업·비영업자산), FCF(잉여현금흐름), 부채비율 등 기타로 분류해 다각적인 지표를 예로 제시했습니다. 비재무지표는 지배구조 관련 일반주주 권익제고, 이사회 책임성, 감사 독립성을 위한 여러 요소를 기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항목 및 기관투자자 등 시장참여자가 주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가령 상장기업이 성장성 높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분할자회사를 상장하는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다면 기업은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증진하는 계획을 설명하거나 물적분할 후 분할자회사를 비상장 완전자회사로 유지하는 계획을 밝히는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핵심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상장하면서 모회사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상장기업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가 있는 경우 상장기업과 비상장 개인회사간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향후 계획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한 감사 독립성 강화도 좋은 예시로 기업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표설정'에서는 일시적·임시방편적 개선이 아닌 중장기 목표를 제시합니다. 중장기적 사업전략없이 단기적인 주가부양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계량화된 수치로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정성적인 서술 또는 구간제시 등 다양한 방법의 목표설정도 가능합니다. '계획수립'에서 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며 사업부문별 투자, R&D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환원, 비효율적인 자산처분 등 다양한 사업전략적·재무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은 연 1회 공시 사이에 어떤 노력을 이행했는지 잘된 점과 보완 필요사항을 기재(이행평가)하고 주주·시장참여자 의견이 경영에 반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해 쌍방향 '소통'을 확대합니다. 상장사 이사회는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적절히 수립·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필요하다면 이사회 보고,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금융위는 강조합니다. 공시는 연 1회 등 주기적 공시와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영문공시 병행이 권장되며 예고공시도 가능합니다. 이번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해설서 제정안은 최종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중으로 확정·발표될 예정입니다. 이후 준비가 되는 기업부터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을 통해 공시를 시작합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기업 밸류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며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유관기관은 밸류업 세제 지원방안 마련·발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우수기업 표창 등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하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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