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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의 안주잡설] 겨울철의 뜨끈한 유혹 ‘홍합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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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anuary 02, 2022, 10:01:31

 

정진영 소설가ㅣ나는 주종이나 계절에 어울리는 안주를 찾아다닐 만큼 섬세하진 않다. 달지 않은 술에 지나치게 배부르지 않은 안주면 족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마시니 미식가 소리를 듣기는 틀렸다. 그렇게 무딘 내가 해마다 겨울이면 직접 만들어서 꼭 챙겨 먹는 안주가 있다.

 

귀하냐? 아니다. 비싸냐? 그럴 리가. 아마도 한반도에서 가장 저렴하고 흔한 안주 중 하나가 아닐까? 감칠맛이 폭발하는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의 유혹. 홍합탕은 겨울 술꾼의 뜨끈하고 든든한 친구다.

 

홍합의 매력은 ‘가성비’다.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소분해 파는 홍합의 가격은 킬로그램(㎏)당 3000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어패류 중에 이보다 저렴한 건 드물다. 껍질이 부피의 상당량을 차지하지만, 홍합 1㎏은 탕으로 끓이면 서너 명이 앉은 자리에서 소주 각 1병을 비울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많은 술집이 홍합탕을 기본 안주로 내놓고 심지어 무한리필까지 해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값싸고 맛있는 식자재는 흔치 않다. 식자재는 제값을 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값이 싼데 맛있다면 손이 많이 가는 식자재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홍합 손질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우선 수염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족사를 하나하나 떼어내야 한다. 힘과 요령이 필요한 번거로운 일인데다, 엉성하게 손질하면 홍합 살이 족사와 함께 떨어져 나와 낭패를 본다. 껍질에 붙은 이물질도 깔끔하게 제거해야 국물이 맑게 우러난다. 껍질에는 따개비나 굴 껍질 같은 이물질이 잔뜩 붙어 있는데, 철수세미로 힘줘 문질러도 닦아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홍합탕을 끓여주는 데 인색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최근에는 이물질을 제거한 세척 홍합이 많아졌지만, 족사를 떼어내는 일만큼은 여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족사를 떼어내면 홍합이 죽고, 죽은 홍합은 팔 수 없으니 별수 없다.

 

손질 단계만 넘으면 홍합탕 조리의 칠부능선을 넘었다고 봐도 된다. 홍합탕 조리는 좀처럼 실패하기 어려운 ‘아빠의 요리’ 수준. 홍합은 별다른 부재료 없이 대충 끓여내도 그럴싸한 맛을 낸다. 내 홍합탕 조리 경력은 얼추 20년이 넘어가는데, 그중 최고의 맛을 낸 조리법은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미원 한 꼬집을 넣어 끓여낸 홍합탕이었다. 홍합의 감칠맛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조리법이라고 자부한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맛에 빠지면 무, 파, 마늘, 청양고추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홍합은 다른 조개류와는 달리 오래 끓여도 살이 그리 질겨지지 않는다. 국물이 짜다 싶으면 물을 조금 더 부으면 된다. 다른 조개보다 끓일 때 이물질이 많이 떠오르므로 이를 부지런히 국자로 걷어내는 수고만 하면 된다.

 

홍합탕을 기본 안주나 술자리의 조연쯤으로 취급하면 섭섭하다. 홍합탕 하나만으로도 그럴싸한 코스 요리를 짤 수 있으니 말이다. 먼저 홍합탕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을 마시자. 크으! 국물 맛도 기가 막히지만, 잘 익은 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안줏거리다. 껍질을 까서 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홍합의 암수는 살의 색으로 구별할 수 있는데, 붉은 게 암컷이고 흰 게 수컷이다. 암컷의 맛이 더 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 입맛에는 둘 다 비슷하다. 홍합은 껍질의 부피가 커서 뒷정리가 번거로운 편이다. 살을 발라 먹을 때 큰 껍질 속에 작은 껍질을 집어넣어 포개면 쓰레기 부피가 줄고 뒷정리도 간편해지니 참고하자.

 

술자리에 곡기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은가. 남은 국물에 삶은 소면을 말아 먹어보자. 잔치국수 저리 가라 수준의 별미다. 소면을 삶기 귀찮다? 국물에 라면을 끓여보자. 농심 ‘너구리’나 오뚜기 ‘오동통면’ 같은 해물 베이스 국물 맛 라면과 궁합이 훌륭하다. 국물 맛이 기가 막히다.

 

늦은 밤에 밀가루가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죽을 끓여보자. 냉장고에 있는 찬밥이나 먹다 남은 밥을 적당량의 홍합탕에 말아 냄비에 붓고 약불에 오래 끓인다. 남은 홍합살을 썰어 넣어 끓이면 더 좋다. 쌀알이 풀어지면 불을 줄이고 김 가루를 뿌린 뒤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숟가락으로 골고루 섞어준다. 고소한 맛과 감칠맛 사이에서 춤을 추는 강렬한 참기름 냄새. 정말 죽이는 죽이다. 이렇게 한 상 차려 먹고 나면 홍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홍합탕은 내게 위로의 안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2008년 겨울에 나는 홀로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0대 전부를 함께 했던 첫사랑도 내게 이별을 고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취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청승을 부렸다.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숙취로 아픈 머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백사장을 걸었다. 백사장에는 밤새 먼 바다에서 잡동사니가 떠밀려와 있었다. 나는 잡동사니 사이에서 홍합 뭉치를 발견했다. 파도에 못 이겨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백사장까지 떠밀려온 듯했다. 나는 홍합 뭉치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 대충 손질한 뒤 지난밤에 먹다 남은 ‘너구리’ 국물에 넣고 끓였다. 밤새 차갑게 식었다가 매콤한 홍합탕으로 부활한 라면 국물이 허기를 불러일으켰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자 온기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며 남은 눈물을 밀어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그 맛의 재현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맛은 조리법대로 나오는 게 아닌가 보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자연산 ‘섭’이 진짜 홍합이고, 우리가 아는 홍합은 ‘지중해담치’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언젠가 먹어본 울릉도 ‘섭’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아기 주먹만 한 ‘섭’의 살의 맛과 식감은 손가락 한마디만 한 ‘지중해담치’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맛을 볼 수 있는 귀하신 몸인 ‘섭’보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지중해담치’에 더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섭’은 섭섭하겠지만, ‘지중해담치’ 네가 앞으로도 그냥 홍합인 척해라.

 

■정진영 필자

 

소설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로 만들어졌으며, '젠가'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앨범 '오래된 소품'을 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공저)이 있다.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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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itnno1@inthenews.co.kr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 공개…‘쪼개기상장’ 시장에 설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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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16:14:17

인더뉴스 문승현 기자ㅣ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기업가치 제고계획' 수립 원칙과 세부 작성법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습니다. 밸류업 당사자로 새로운 형태의 공시라는 숙제를 받아든 상장기업에 길라잡이를 제시해 이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고 적극적인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조처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배구조'를 한국증시 주요 저평가 요인중 하나로 지목하고 개선방안 공시를 권고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수용성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위원회는 2일 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과 함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습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흐름도를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으로 구성했습니다. 먼저 '기업개요'에는 기업가치 제고계획이 그 자체로 기업에 대한 완결성 있는 보고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업종, 주요 제품·서비스, 연혁, 재무상태 등 기본적인 정보를 기재합니다. '현황진단'은 기업의 사업현황에 대해 시장환경·경쟁우위요소·리스크 등을 입체적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재무·비재무 지표 중 중장기적인 가치제고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지표를 선정·분석하는 단계입니다. 주요 재무지표는 ▲PBR(주가순자산비율), PER(주가이익비율) 등 시장평가 ▲ROE(자기자본이익률), ROIC(투하자본이익률), COE(주주자본비용), WACC(가중평균자본비용) 등 자본효율성 ▲배당(금액·성향·수익률), 자사주(보유분·신규취득·소각내역), TSR(총주주수익률) 등 주주환원 ▲매출액·영업이익·자산 증가율 등 성장성 ▲자산 포트폴리오(영업·비영업자산), FCF(잉여현금흐름), 부채비율 등 기타로 분류해 다각적인 지표를 예로 제시했습니다. 비재무지표는 지배구조 관련 일반주주 권익제고, 이사회 책임성, 감사 독립성을 위한 여러 요소를 기존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항목 및 기관투자자 등 시장참여자가 주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합니다. 가령 상장기업이 성장성 높은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분할자회사를 상장하는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가 있다면 기업은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을 보호·증진하는 계획을 설명하거나 물적분할 후 분할자회사를 비상장 완전자회사로 유지하는 계획을 밝히는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은 핵심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상장하면서 모회사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상장기업 지배주주 및 그 특수관계인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가 있는 경우 상장기업과 비상장 개인회사간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사실관계와 향후 계획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통한 감사 독립성 강화도 좋은 예시로 기업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밝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목표설정'에서는 일시적·임시방편적 개선이 아닌 중장기 목표를 제시합니다. 중장기적 사업전략없이 단기적인 주가부양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계량화된 수치로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정성적인 서술 또는 구간제시 등 다양한 방법의 목표설정도 가능합니다. '계획수립'에서 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며 사업부문별 투자, R&D확대,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 자사주 소각·배당 등 주주환원, 비효율적인 자산처분 등 다양한 사업전략적·재무적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업은 연 1회 공시 사이에 어떤 노력을 이행했는지 잘된 점과 보완 필요사항을 기재(이행평가)하고 주주·시장참여자 의견이 경영에 반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해 쌍방향 '소통'을 확대합니다. 상장사 이사회는 경영진이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적절히 수립·이행하는지 감독하고 필요하다면 이사회 보고, 심의 또는 의결을 거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금융위는 강조합니다. 공시는 연 1회 등 주기적 공시와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영문공시 병행이 권장되며 예고공시도 가능합니다. 이번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해설서 제정안은 최종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중으로 확정·발표될 예정입니다. 이후 준비가 되는 기업부터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을 통해 공시를 시작합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기업 밸류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이며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유관기관은 밸류업 세제 지원방안 마련·발표, 코리아 밸류업 지수 개발,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우수기업 표창 등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하며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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