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뉴스 이진솔·남궁경 기자 | “장기적인 측면에서 본업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노력해 달라.”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지난달 열린 ‘2020년 하반기 사장단회의’에서 계열사 사장들에게 “디지털 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사업과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해왔던 사업의 경쟁력이 어떤지 재확인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이후 신동빈 회장은 전국 유통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본업’의 경쟁력을 점검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13일 이뤄진 롯데그룹 임원인사에는 본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건하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유통업계의 시각입니다. 쇼핑과 화학 등 그룹의 두 축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가 부진한 실적을 보이는 가운데 ‘인적 쇄신’을 그룹 전반을 재건할 발단으로 삼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 코로나19 위기 속 이례적 인사
이번 인사는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실적이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발표됐습니다. 위기 극복이 시급하다는 절박함이 읽히는 지점입니다.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에 영업이익 14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롯데케미칼도 대산공장 사고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감소 등 잇따른 악재가 이어져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0.5% 감소했습니다.
새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된 이동우 전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은 오랜 기간 롯데하이마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난 2015년 부임해 롯데하이마트에서 꾸준한 실적 개선을 끌어내며 2017년에는 처음으로 매출 4조원을 올렸습니다.
특히 이동우 사장 아래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2014년 온라인 사업 진출을 통해 본업의 경쟁력 혁신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이동우 사장 부임 직후인 2015년 하이마트는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 50%를 달성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최근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오프라인 점포는 정리하고 온라인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해 올해 2분기 영업이익 69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롯데그룹 주요 상장사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임원 인사가 롯데 그룹 창업 이래 최악의 경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동우 사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한 만큼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황각규 부회장을 대신할 적임자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 ‘본연’의 경쟁력 향상에 집중
이동우 사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로 옮기면서 롯데하이마트 시절 수익성 개선 및 본연의 경쟁력 강화로 사업을 성장시킨 전략이 롯데그룹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통사업에서는 ‘롯데온(ON)’이 그 출발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롯데쇼핑은 백화점과 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는 대신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추세입니다. 지난 4월 모습을 드러낸 롯데온은 백화점과 마트, 홈쇼핑, 하이마트 등 7개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로 합친 플랫폼입니다.
신동빈 회장 역시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라”며 롯데온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롯데온 출범 당시 롯데쇼핑은 이커머스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아 오는 2023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포부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과 네이버 등 경쟁업체에 밀려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인수·합병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던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의 퇴임은 이번 임원인사가 사업 확대보다 기존 조직의 혁신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황각규 부회장은 롯데홈쇼핑, 롯데주류 등 그룹 내에서 굵직한 사업 확장을 주도해온 인물로 꼽힙니다.
황각규 부회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며 “젊고 새로운 리더와 함께 그룹의 총 역량을 집중해야한다”며 “그룹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이유로 퇴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