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기자 권오성] 보험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모 생명보험사에서 일하는 보험설계사 최 아무개 씨다. 4년 전 그의 권유로 변액유니버셜종신보험 상품 하나를 가입했다. 그는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얼마 전 생명보험사로 직장을 옮긴 참이었다.
약간은 ‘돕는다’는 생각으로 가입했던 보험의 혜택을 받은 건 몇 달이 지난 뒤였다. 팔에 작은 종기가 나서 한 병원에서 검사와 함께 떼어내는 수술을 하게 됐다.
그런데 마침 우연찮게 최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수술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는 “왜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그런 수술도 보장에 포함되는지 살펴보았고, 보험금을 받도록 해줬다.
사실 보험에 대한 내 생각은 두루뭉술한 안개와 같았고 지금도 비슷하다. 매달 돈을 받아가면서도 보장은 최대한 피하도록 설계된 공학자들이 모여 만든 알 수 없는 복잡한 공식들이 종합된 어떤 서류 뭉치들의 집합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최로 인해 많이 희석됐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사람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종류들이 넓어지면 자유가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복잡함 속에 오히려 선택과 자유를 포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험의 다양한 상품과 상세한 약관들은 설사 보험사들의 선의에 의해 탄생했을지라도 너무 많은 선택지가 상대방을 압도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이때 필요한 것은?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험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내친 김에 보험이란 무엇인지 찾아 봤다. 두산백과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종류의 사고를 당할 위험이 많은 사람들이 미리 돈을 각출해서 공통의 재산을 만들고, 사고를 당한 사람이 여기에서 급여를 받는 경제제도라 한다.
그렇구나. 보험은 나의 자동차 사고나 암 발생, 갑작스런 재해 등에 대비하는 지극히 개인을 위한 상품이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비슷한 위험을 안고 사는 (얼굴도 모르는)사람들이 보험사를 매개로 함께 서로의 위험을 함께 챙긴다’는 이타성이 바탕에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험은 그 자체로 마음이고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적어도 보험설계사 최가 나에게 보여준 바는 그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더뉴스’의 첫 글자가 뜻하는 바도 사람(人)이다. 보험 전문매체로서 이름부터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1주년을 맞은 인더뉴스가 보험의 본질을 꿰뚫는 좋은 기사들을 전하며 승승장구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