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워치 편집국장 조용만] 2008년 상하이 특파원으로 부임하기 전 많이 바빴다. 안팎으로 정리·준비할 일이 많은 데다, 부임전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있었다. ‘쌩판’ 몰랐던 중국어, 특파원 내정 후 3개월 동안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는 배워야 했다.
성조를 익히고 단어, 문장을 읽고 쓰느라 고달팠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단어는 쉽게 익혔지만 글자마다 다른 성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단어의 뜻이 우리와 달리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자가 표의문자(表意文字, 글자 하나하나가 일정한 뜻을 가진 문자)다 보니 단어의 원래 의미가 이거였구나 하고 느낀 부분도 많았다.
그렇게 어렵게 배웠던 중국어 표현 중에 ‘위 보험기견(为 保险起见..爲 保險起見)’라는 말이 있다. ‘만일에 대비해서’라는 의미다. ‘保險’은 우리가 흔히 쓰는 보험이란 뜻이지만 안전이라는 의미도 있다. ‘起見’은 ‘의견을 내놓다’라는 의미인데, 통상 앞글자인 ‘爲’와 합쳐 ‘~의 입장에서, ~라는 견지에서’ 등의 뜻으로 쓰인다. 이 문구에서 ‘보험’의 의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장치쯤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보험 든다’는 말도 그렇다. 액면대로는 보험 상품에 가입한다는 의미다. 어릴 때는 이 정도 의미만 떠올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의미도 있다는 걸 알았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고위직에 오르거나, 혹은 퇴임한 거물들이 현업에 복귀했을 때를 대비해 평소에 대접하고, 신경써 준다는 의미도 있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미로 더 많이 쓴다. 개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보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다. 질병이나 상해, 사망같은 미래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인식해서 자발적으로 보험을 든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친척이나 지인이 보험업에 종사하면서 가입한 게 많다.
외환위기로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설계사로 나선 친구가 종신보험 가입을 지겹게 독촉했을 때는 언쟁을 벌인 기억도 있다. “내가 죽고 아내와 자식에게 보험금을 주는 것보다 지금 그 돈으로 가족과 여행을 다니고 외식하는 게 낫겠다”며 몇 번이나 거절했다.(결국 변액연금보험을 하나 들기는 했지만).
평균 수명이 뒤에서 1, 2위를 다툴 정도로 험한(?) 직업에 종사한 터라, 나이가 들면서 보험에 대한 인식은 커졌다. 암보험은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뜻하지 않게 보험금을 탄 경우도 있었다. 직장 건강검진에서 대장 내시경을 검사를 받고 용종을 떼냈는데, 간단한 시술에도 보험금이 나왔다.
그렇지만 보험은 여전히 ‘비용’으로 인식된다. 매달 월급계좌에서 수십만원이 자동적으로 빠져나가는데, 여기에 걸맞는 ‘보험의 우산’을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미래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 지 모르고, 평소에 갖춰야 할 위기대응의 자세는 ‘만일에 대비해서’인 게 맞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보험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건 미래의 위험이 그만큼 현실이 됐다는 얘기다. 낸 만큼 보험금을 못 받았다는 건, 바꿔 말해 ‘내가 그만큼 덜 아프고, 덜 다치며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이런 사실에 감사하고, 그런 상태를 이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보험의 반대급부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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