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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6살 국내 1호 이마트 창동점, ‘셀프 계산대·전문점’ 품고 매출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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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ly 29, 2019, 15:07:17

창동점, ‘무인 계산대’·‘전문점’ 등 도입해, 지난 6월 13일 재오픈..매출 8.5%↑
숍인숍 형태 ‘일렉트로마트’..가전 제품 매출 작년 동기比 3배↑..키 테넌트 역할

 

인더뉴스 김진희 기자ㅣ #1. “카드세요? 4번으로 가세요.” 이마트 창동점의 결제 방법이 바꼈다.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은 무인 계산대의 빈자리가 날 때마다, 한 사람 씩 무인 계산대 ‘번호’를 안내 받았다.

 

#2. 이마트 창동점 1층에는 ‘스타벅스’, 2층에는 ‘일렉트로마트’와 ‘데이즈(DAIZ)’가 비교적 큰 규모로 선보였다. 특히 기존 가전코너에서 볼 수 없던 ‘다이슨’ 상품이 입고돼 있다.

 

올해 26살인 이마트 창동점이 최근 새롭게 태어났다. 창동점은 1993년 11월 국내 최초로 오픈한 이마트 1호점이다. 지난 3개월 동안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치고 6월 13일 재오픈하면서 매출이 껑충 뛰어올랐다. 이마트는 한 달 후인 이달 12일 창동점 6월 총매출 신장률( +8.5%)을 이례적으로 공시했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들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요즘, 창동점의 어떤 변화가 매출 상승을 이끌었는지 지난 19·27일 각기 다른 시간대에 매장을 방문해 살펴봤다.

 

 

이마트 창동점의 가장 큰 변화는 ‘무인 계산대(셀프 계산대)’ 도입과 ‘숍인숍(Shop in shop)’형태의 전문점 운영이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이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스타벅스·베이커리 및 화장품 숍을 비롯해 이마트 매장과 ‘무인 계산대’가 큰 규모로 자리잡고 있었다.

 

◇ 캐시어 없는 무인 계산대 대대적 도입..18대 중 16대 차지

 

눈길을 끈 것은 단연 ‘무인 계산대(셀프 계산대)’였다. 창동점은 이번 리뉴얼을 통해 기존에 없던 무인 계산대를 전격 도입했다. 총 18개의 계산대 중 무인 계산대가 16개, 캐시어(cashier)가 계산해주는 계산대는 단 2개로, 90% 이상이 무인 결제 시스템이다.

 

창동점이 이렇듯 여러 대의 무인 계산대를 도입한 것은 소량을 구매하는 장바구니 고객이 많은 것과 연관이 있다. 창동점은 다른 지점에 비해 매장 규모나 매대 간격이 작은 편이고, 근거리 고객이 주로 방문하는 ‘포켓상권’에 속한다. 실제로 매장을 찾았을 때 카트를 끌고 다니는 고객보다,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캐시어가 있는 계산대(유인 계산대)는 카트 이용객(주로 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고객)이나 상품권 및 기타 결제를 원하는 고객들이 이용하게 돼 있다. 다만, 취재차 매장을 갔을 때 캐시어 계산대에서 소량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도 눈에 띄었다.

 

19일 저녁 7시 경. 퇴근길에 장을 보고, 무인 계산대 이용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제법 길었다. 이마트 직원이 무인 계산대 존(zone) 입구에 서서 결제 방법을 묻고, 빈 계산대가 날 때마다 번호를 안내했다.

 

기자는 4번 계산대를 배정(?) 받았다. 무인 계산대가 낯설었지만, 실제로 이용해보니 쉬운 편이었다.

 

 

무인 계산대는 일반 포스기(POS)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계산대 왼편에 계산 전 상품을 올려놓고, 바코드를 스캔한 후 오른편으로 상품을 옮긴다. 바코드 스캔시 기계 모니터에 해당 상품명과 가격이 표시된다. ‘결제하기’를 누르면 카드·SSG PAY·현금 등 결제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바뀐 계산 방식에 대해 고객들은 어렵지 않게 적응한 모습이었다. 30세 직장인 A씨는 “본인이 고른 물건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알지 않냐”며 “직접 계산하니까 좀 더 신경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답했다. 유리나 비스킷 등 자칫 상하기 쉬운 상품들을 계산하고 담을 때, 조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함께 온 고객 B씨는 “눈치게임 없이 순서대로 계산하게 된 것”을 변화 포인트로 꼽았다. 계산대 마다 각각 줄을 서던 과거에는 좀 더 빨리 계산할 수 있는 ‘짧은 줄’을 찾았지만, 한 줄 서기로 바뀌면서 그럴 일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입점 → 매출 성장 견인

 

창동점의 또 다른 특징은 ‘숍인숍(Shop in shop)’ 형태의 전문점 도입이다. 창동점 2층에는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체험형 디지털·가전전문 매장인 ‘일렉트로마트’를 비롯해 자체 의류 브랜드인 ‘데이즈(DAIZ)’가 들어섰다. 이밖에 각기 다른 층엔 ▲스타벅스 ▲자주(JAJU) ▲Wine & Liquor 등이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입점했다.

 

 

특히, 리뉴얼 후 ▲에어컨 ▲건조기 ▲의류관리기 등 대형제품을 중심으로 가전 제품 매출이 크게 신장하는 등 카테고리별 매출 비중의 변화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일렉트로마트’의 입점으로 지난 6월 13일~7월 24일 간 가전 매출의 구성비는 작년 동기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구매 객수도 같은 기간 170% 가량 증가했다.

 

이마트 측은 “일렉트로마트가 창동점 부활의 1등 공신으로서 키 테넌트(key tenant; 고객을 끌어들이는 핵심 점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3달이 넘는 리뉴얼 기간 동안 대형가전 구매를 미뤄온 고객들의 대기수요가 오픈 프로모션과 맞물려 몰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일렉트로마트 도입을 통해 기존 창동점에서 선보이지 못했던 ▲애플 ▲다이슨 ▲카메라 등 젊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들이 추가 입점된 것 역시 젊은 고객층 유입의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창동점 리뉴얼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기존 노후화된 점포를 깨끗하고 세련되게 리뉴얼함과 동시에 일렉트로마트, 식음서비스(F&B) 매장 등이 입점하면서 고객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며 “창동점 사례는 작지만 내실있는 이마트 소규모 점포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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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기자 today@inth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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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로 따져 본 SK 이동통신사업 성장사…특혜였나? 실력이었나?

팩트로 따져 본 SK 이동통신사업 성장사…특혜였나? 실력이었나?

2024.06.05 10:12:53

인더뉴스 박호식 기자ㅣ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과거 정부의 특혜’가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에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인수자금 불분명한 돈 쓰는 게 상상조차 어렵다는 김XX 증언 봤을 때 이게 공표되면 선경그룹이 이동통신사업 진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설시했습니다. 비자금 300억원, 과거 정권의 특혜로 SK가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SK그룹의 한 CEO는 지난 3일 열린 임시 수펙스추구협의회(SK그룹 주요 계열사 CEO가 참석하는 최고 경영 협의 기구)에서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고 발끈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이번 판결에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 잡겠다"며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전제했지만, 근래 보기 드물게 강한 어조였습니다.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진출에는 도대체 어떤 특혜가 있었을까요? 재판부의 판결에 SK그룹은 왜 명예를 걸겠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걸까요? 당시 이동통신사업권 선정과정을 언론보도와 정부, SK그룹의 발표문을 통해 팩트 중심으로 시기별로 살펴봤습니다. #1. 체신부 제2이동통신 신규 사업자 선정(1992년 8월 20일) 체신부는 1992년 8월 20일 오전 9시에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 신규 사업자로 선경그룹의 유공이 대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합니다.   체신부는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 등 3개 법인을 대상으로 서울지역 통신망 건설능력과 연구개발 계획, 외국인 주주와 협력관계, 사업 경영능력 등에 관한 36개 항목을 심사평가한 결과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얻어 허가대상 법인으로 확정됐다고 설명합니다.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은 7496점,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은 7099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자신문 편집국장과 논설 주필을 역임한 이현덕씨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이날 오전 9시 기자회견에서 “심사를 전후해 외부 압력은 없었고 사업자 심사결과는 청와대에 사전 보고하지 않았다”며 공정한 기준에 의한 선정임을 강조합니다.(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2011년 06월 10일자 전자신문) 하지만 체신부의 발표가 나자마자 정치권에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합니다. 당시 최종현 회장과 노태우 대통령은 사돈 관계로 야당을 중심으로 6공 비리의 대표적 사례라는 공세가 이어집니다.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 회장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직후인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당한 노력의 결실’을 강조합니다. 최 회장은 "노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이유 때문에 특혜를 받지는 않았고 앞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1, 2차 심사 결과 대한텔레콤이 모든 항목에 걸쳐 경쟁업체보다 앞선 사실이 보여주듯 사업자 선정은 대한텔레콤의 능력이 우월한 결과이며 로비나 특혜를 통해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주장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연합뉴스 1998년 8월 20일) 이같은 설명도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 김영삼 대표도 나서며 사업자 선정 취소를 주장합니다. 대선을 불과 4개월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2. 선경그룹 사업권 자진 반납 선택(1992년 8월 27일) 선경그룹은 결국 사업권 자진 반납을 선택합니다. 사업자 선정 후 불과 일주일만입니다. 당시 선경의 제2 이동통신 컨소시엄인 대한텔레콤의 손길승 사장은 27일 오후 선경빌딩 13층 대회의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선경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빚은 사회적 물의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국민 총화합 차원에서 이동통신사업 추진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힙니다. 손 사장은 "이번 사태는 국민 정서상의 문제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게 되었을 뿐, 선경의 사업자 선정은 정당하다. 때문에 차기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위한 신청을 받을 경우 실력으로 승부하여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강력한 희망이다"고 말합니다.(연합뉴스 1992.08.27.) 이에 앞서 청와대, 여당, 정부의 강한 압박이 작용합니다. 이현덕 전자신문 전 주필은 당시를 회고하며 노태우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 김항덕 유공 사장 앞으로 보낸 8월 27일자 공문의 전문을 공개합니다.(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 2011년 06월 10일자 전자신문) '이동전화사업에 대한 권고'라는 제목의 비공개 문건에는 "통신사업권을 자진 포기하여 (국론이 분열된) 현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라", "적법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제 2이동통신사업자로 허가했지만 대통령과 특수관계임을 이유로 정치권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국론을 조속히 통일하고, 정치사회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 협조하라"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사업을 서둘러 반납하라는 종용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3. 문민정부에서 선정한 제2이동통신사업자(1994년 1월 26일) 김영삼 정부는 1993년 12월 통신 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방안으로 (1)한국통신이 보유한 한국이동통신 지분 약 45%를 매각하는 방식의 민영화 (2)전경련 주도 하에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하는 투트랙 방안을 발표합니다. 선경은 문민정부 출범 2년째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지분 매수 방식을 선택해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합니다.(선경그룹, 이통주식 23% 낙찰, 연합뉴스 1994년 1월 26일자) 선경은 정부의 제2이통 허가 사업에 의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이동통신 지분 공개 매수를 선택합니다. 당시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있었고, 정부가 사업권을 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또 한번의 '특혜 시비'를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경은 1994년 1월 24~25일 이틀 간 열린 '한국이동통신 공개 경쟁입찰'에 참여, 289개의 다른 기업,개인을 제치고 지분 23%를 약 4271억원에 인수합니다. 주당 8만원이었던 주식을 시세의 4배인 주당 33만 5000원에 인수, 예상 가격보다 1500억원을 더 부담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승자의 저주라는 고가 논란이 계속되자 최종현 회장은 "우리는 미래를 샀다"며 내부 구성원을 다독였다고 합니다.(SK그룹 사사) 정부의 허가를 얻는 제2이동통신사업권은 포스코-코오롱 연합이 획득했고 '017 신세기 통신'이 탄생합니다 #4. 미주 경영실 텔레커뮤니케이션팀 신설, 노태우 정부 이전에 통신사업 추진(1984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선경은 최종현 회장의 지시로 1984년 미국 경영기획실(SK USA)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발족합니다. 100만달러를 투자하고 선경 직원 50명을 파견해 훈련을 시작합니다.(SK텔레콤 창립 40주년 기념 사사) 노태우 대통령 취임 및 최태원 회장의 결혼보다 한참 전입니다. 이후 미국 유크로닉스, 선경정보시스템, YC&C 등 관련 회사를 설립한 다음 1991년 4월 국내에 선경텔레콤(대한텔레콤)을 설립합니다. 사업 준비에 착수한 시점, 특혜 시비로 사업권을 반납한 점, 결국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는 사업권 경쟁이 아닌 자본시장에서 지분을 매입해 시작한 점 등 일련의 과정을 감안하면, 선경이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나 사돈과 관련한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자금 300억원 또는 사돈이 선경의 이동통신사업에 기여했다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이는 부분입니다. 향후 대법원에서는 어떤 판단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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