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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민주주의 남기고 ‘동지 김대중’ 곁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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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June 11, 2019, 23:06:46

대학 시절 당찬 태도로 ‘다스’ 별명 얻어..전쟁 겪으며 가부장제 폐해 눈떠
박애주의·화합에 기초한 포용적 정치..평화 중시한 햇볕정책에서 드러나

인더뉴스 이진솔 기자ㅣ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이희호는 무일푼이던 김대중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1962년 당시 이희호는 미국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은 뒤 귀국해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연합회에서 여성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때 김대중은 무일푼 정치 지망생이었던 데다 전처와 사별하고 홀로 두 아들을 부양하느라 형편도 변변찮았다. 그런데도 청혼을 승낙한 이유는 두 사람이 공유하던 민주주의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 선택은 이희호의 삶을 바꾼 중대한 결정이 됐다.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 (‘동행’ 中)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행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 까지 47년에 걸쳐 우리 근현대사 곳곳에 스며있다. 이희호 이사장은 대통령 부인을 넘어 1세대 페미니스트이자 정치가로서 민주주의라는 유산을 남기고 10일 별세했다.

 

◇ 전쟁 속에서 가부장제 폐해 목격..1세대 페미니스트 활동

 

1946년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한 이희호 여사는 대학생 시절 독일어 중성관사인 ‘다스’(da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학생들을 이끌며 매사 당당한 리더십을 발휘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전통적인 여성성이 강조되던 당시 세태에 비춰보면 파격적인 별명이다.

 

되려 여학생들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면 화가 났다고 한다. 이희호 이사장은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한겨레)에서 “신입생 환영회 같은 행사에서 여학생들은 수줍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어 후배 여학생에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하게 앞을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이희호 이사장은 부산 피란 생활 중 가부장제가 드러내는 참상을 극명하게 목격한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남성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면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순국선열 반열에 올라간다. 그러나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만 있을 뿐이었다.” (‘동행’ 中)

 

강렬한 경험은 이후 페미니즘 운동을 추진하는 동력이 됐다. 1958년 YWCA에서 기획한 ‘혼인신고 합시다’ 운동을 시작으로 여성문제연구원 간사를 거치며 여성 권리 쟁취에 매진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은 남편은 8촌까지 친족으로 인정하지만, 아내는 4촌까지만 인정하는 가족법이 1989년 개정되면서 결실을 본다. 재산권과 상속권 행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아내를 따라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희호 이사장의 노력을 정책에 반영했다. 여성가족부가 창설됐고 장관 4명을 포함해 여성 장차관 수를 크게 늘렸다. 이희호 이사장과 만남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결과들이다.

 

◇ 박애주의·화합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앙 정치적으로 실천

 

이희호 이사장은 감리교 신자였던 부모를 따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대학 시절 속해있었던 기독교청년학생운동과 유학에서 돌아와 몸담았던 YWCA는 기독교 단체다. 그가 생전 펼친 정치 운동에서도 신앙에 기반한 박애주의와 화합의 실천이 드러난다.

 

1973년 3월 28일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으로 망명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러한 신념이 드러난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 탄압을 가하는 이들에게도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들 위에 축복이 있기를 비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는 말씀대로 나는 그들을 위해서도 빌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옥중서신. 2: 이희호가 김대중에게’ 中)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반대편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드러낸 바 있다. 1998년 2일 취임식에 과거 정적이었던 이들을 초대했으며 그들을 용서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햇볕정책을 내세워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했다.

 

이희호 이사장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도 종교적 신념이 담겨있다. 그는 유언을 통해 “국민들이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국민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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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솔 기자 jinsol@inthenews.co.kr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낸드플래시 시장 선도하겠다”

삼성전자, 업계 최초 ‘9세대 V낸드’ 양산…“낸드플래시 시장 선도하겠다”

2024.04.23 11:07:48

인더뉴스 이종현 기자ㅣ삼성전자[005930]가 업계 최초로 '1Tb(테라비트) TLC(Triple Level Cell) 9세대 V낸드' 양산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습니다. AI시대가 도래한 만큼 현재 업계에서는 AI기술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고용량·고성능 낸드플래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9세대 V낸드' 양산을 시작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소 크기 셀(Cell)과 최소 몰드(Mold) 두께를 구현해 '1Tb TLC 9세대 V낸드'의 비트 밀도를 이전 세대 대비 약 1.5배 증가시켰습니다. 동시에 더미 채널 홀 제거 기술로 셀의 평면적을 줄였으며 셀의 크기를 줄이면서 생기는 간섭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셀 간섭 회피 기술, 셀 수명 연장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해당 제품은 더블 스택(Double Stack) 구조로 구현할 수 있는 최고 단수 제품으로 '채널 홀 에칭(Channel Hole Etching)' 기술을 통해 한번에 업계 최대 단수를 뚫는 공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채널 홀 에칭'은 몰드층을 순차적으로 적층한 다음 한 번에 전자가 이동하는 채널 홀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9세대 V낸드'는 차세대 낸드플래시 인터페이스인 'Toggle 5.1'이 적용돼 8세대 V낸드 대비 33% 향상된 최대 3.2Gbps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를 냅니다. 삼성전자는 이를 기반으로 PCIe 5.0 인터페이스를 지원하고 고성능 SSD 시장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한 '9세대 V낸드'는 저전력 설계 기술을 탑재해 이전 세대 제품 대비 소비 전력이 약 10% 개선됐습니다. 허성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Flash개발실장 부사장은 "낸드플래시 제품의 세대가 진화할수록 고용량·고성능 제품에 대한 고객의 니즈가 높아지고 있어 극한의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제품 경쟁력을 높였다"며 "9세대 V낸드를 통해 AI 시대에 대응하는 초고속, 초고용량 SSD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는 'TLC 9세대 V낸드'에 이어 올 하반기 'QLC(Quad Level Cell) 9세대 V낸드'도 양산할 예정으로 고용량·고성능 낸드플래시 개발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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