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정군식 박사] 봄이다. 이제 본격적인 행락철이 시작되고, 여성들은 봄에 무얼 입을지, 가족들에게는 무엇을 먹여야할 지 고민하는 때다. 같은 시기에 방재전문가인 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안전 확보를 위해 분주할 것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되는데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대형 인명피해를 초래하는 ‘방재적’ 취약성이 있다.(좋은 남편이 되고 싶은 분은 이 글에 주목해 주시길….)
1973년 11월 29일. 일본 쿠마모토시(熊本市)의 대양(大洋)백화점에서는 단순 백화점화재로는 일본사상 최대의 사망자(103명)를 낸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통로와 계단실에 쌓아둔 종이상자에 누군가가 담배꽁초를 버린 것에서 시작돼 매장으로 확대됐다.
마침 불은 침구류 매장으로 확대되는 바람에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불길은 계단실의 상승기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상층과 건물전체로 번져 손을 쓸 수 없게 됐다. 짧은 시간에 불이 빠르게 확산했던 가장 큰 원인은 증축공사로 인해 일부 계단실의 방화문과 중앙 에스컬레이터의 방화셔터가 개방됐기 때문이다.
특히 매장을 중요시하는 백화점 특성에 따라 계단이 공간의 배면이나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배치는 계단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어렵고, 각 공간으로 부터의 계단까지 이동 거리에 편차가 발생해 피난에 취약한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었다. 계단이 열과 연기에 오염돼 총 3개소의 계단 중 1곳만이 피난경로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단 주위에서 64명(사망자의 62%)이, 연기가 올라오는 계단을 피해 반대편 구석에서 25명(사망자의 24%)이 희생됐다.
물론, 이 사건은 40여년 전의 일로 소방 설비가 덜 갖춰졌을 때의 얘기다. 지금의 백화점은 소방 설비가 잘 준비돼 있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직원들의 훈련과 교육도 철저히 하고 있다. 어떤 곳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란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계는 고장 날 수 있고, 사람은 실수 할 수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신뢰도(Reliability)와 휴먼에러(Human Error)라고 하는데, 이러한 고장과 실수까지 완벽하게 제어하는 시스템은 안타깝게도 아직 없다.
실제 현장을 점검해 보면 통로에 상품을 쌓아 두거나 방화셔터의 아랫쪽에 장애물을 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난계단의 방화문을 도어스토퍼(Door stoper)나 굄목을 사용해 개방한 채로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들이 여전히 있다.
이에 경기도에서는 2011년부터 방화문의 개방으로 인명 및 재산 피해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구 신고포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첫해에 2994건의 신고가 접수돼 1645건을 지급했고, 이듬해에는 1362건의 신고가 접수돼 668건을 지급했다.
이용자들 스스로도 안전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마음 놓고 이용하기 위해서 매장의 비상구 위치와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쇼핑을 시작하는 게 바로 그것.
매장 측에서는 비상구의 철저한 관리는 물론 매장에서 비상구로 이어지는 피난경로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없애는 것도 준수해야 한다. 매장 내 광고판이나 사인보드 설치를 할 경우도 피난안내표지나 피난유도 등이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봄이다. 가족단위로 나들이가 잦다. 여기에 비례해 아내의 길어지는 쇼핑에 짜증내거나 재촉하는 남편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남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아내가 쇼핑에 집중하는 동안 비상구의 위치가 어딘지,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주변에 장애물은 없는지, 소화기나 옥내소화전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두시라. 가족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 100점짜리 아빠가 되는 지름길이다.